《반전시도》 

▤ 전시제목: 《반전시도》 

▤ 참여작가: 구지민, 김소희, 밈모, 박정원, 배철, 서해근, 안지원, 오상미, 요요진, 이혜목, 임은빈, 조정현, 주진석, 최지수, 한비롯, 황동하, 비주얼보이스(참여 작가: 김근아, 김나연, 김노랑, 김선경, 김정일, 김지하, 니카미 유리에, 미로, 박성환, 박성현, 백주미, 이진주, 인내, 전혜자, 정영관, 조한결, 최기원, 최지해, 폴짝/기획: 우정아, 김지하, 윤혜진, 조한결)

▤ 전시기간: 2026. 8. 1.(토)~8. 20.(목) 매주 월요일 휴관

▤ 전시장소: 요즘미술+요즘미술일층(서울시 종로구 혜화로9길 7, 1층/3층)

▤ 전시시간: 오후 3~8시

▤ 전시기획: 요즘미술(박용석, 백필균, 황귀영)

▤ 전시서문: 백필균(독립 기획자)

▤ 디자인: 박용석

부대 행사

▤ 한비롯 x 탄트진윈 작가 퍼포먼스: 2026. 8. 1. 오후 3시 30분~40분

▤ Title: Anti-War Attempt 

▤ Artists: Gu Jimin, Kim Sohee, Mimmo, Jeongwon Park, Cheol Bae, SEO Hae Geun, Jiwon An, Rebecca Sangmee Oh, Yoyojin, Lee Hyemok, LIM EUN BIN, Cho Junghyun, Ju Jinsuk, Choi Jisu, Han Bierot, Hwang Dongha, Visual Voices(Artists: Kim Keun A, Nayeon Kim, Kim Norang, Claire Kim, Jungil Kim, Kim Jiha, NIKAMI YURIE, MIRO, Seong-whan Park, Park Sunghyun, Joo-mee Paik, Leepearl, INNÉ, Jeon Hye JA, Neo, Hangyeol Jo, Kiwon Choi, Jihae Choe, Paul jjack/Curating: Woo Jung A, Kim Jiha, Yun Hyejin, Hangyeol Jo)

▤ Dates: 2026. 8. 1.~8. 20. 3~8 PM(Monday off)

▤ Venue: 1F & 3F, 7, Hyehwa-ro 9 gil, Jongno-gu, Seoul. Art these days

▤ Curating: Park Yong-seok, PAIK Philgyun, Guiyoung Hwang

▤ Curatorial statement: PAIK Philgyun(Independent curator)

▤ Design: Park Yong-seok

Accompanying events

▤ Han Bierot x Thant Zin Win’s Performance: 2026. 8. 1. 3:30–3:40 PM

우크라이나 대 러시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략에 이어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침공 소식이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폭력의 서사가 쓰이는 오늘날 예술생태계의 일원들이 모여 각자의 질문과 감각을 옮깁니다. 예술이 지금의 현실에 반응하고 발언하는 전시에 많은 관심과 방문 바랍니다.

We witness the war between Ukraine and Russia, Israel’s invasion of Palestine, and now, day after day, reports of Israeli and U.S. strikes on Iran. This exhibition brings together members of the art community, working in a time when narratives of violence continue to unfold, each translating their own questions and sensibilities into artistic form. We invite you to visit the exhibition and engage with works through which art responds to and speaks to the realities of our time.


2026년 요즘미술에 보내는 글

백필균

모임을 설계하는 전시는 나눔을 실천하는 이유로 모종의 구조를 조직한다. 전시 맥락을 구축하는 각기 다른 요소들은 기술로서 구별되고 기호로서 연계한다. 조직된 구조에서 둘 이상의 개체 또는 군집 단위가 상대에게 자기 몫 일부를 전이하는 상황은 양자를 전제하기에 필연적이다. 또한 전시에서 참여하는 창작자-매개자-감상자는 반드시 무엇을 나눈다. 화자와 청자는 우연한 성공부터 계획된 실패까지 분할과 분배로 각자의 몫을 서로의 것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자처한다.

이는 공개 모집으로 전시에 초대하는 자와 초대되는 자에게도 적용된다. 기획자가 주제와 참여 조건을 설정한 이후 지원자가 그 기준에 얼마나 적합하고 그 기대에 어떻게 적응할지, 또는 역으로 기획자가 동료의 기준과 기대에 일정 수준 이상으로 부합하거나 부응할지 서로 모른다. 공모의 절차는 미지수를 전제한다.

요즘미술은 2026년 4월 “반전 시도(anti-war attempt)”라는 이름으로 참여자를 공개 모집한 이후 같은 해 8월 동명의 프로젝트 전시를 연다. “거대한 비극 앞에서 무언가라도 해보겠다는 필요성을 느끼는” 고백에 이어 사람들이 응답한다. 공모(公募)는 공모(共謀)로 이어진다. 참여자(팀) 열일곱은 그렇게 모인다. 그들의 자리에 증언하는 몫이 흐른다. 

거의 모두가 전쟁의 반대편에 표류하는 불안을 응시하고(구지민, 밈모, 요요진, 황동하), 허구와 데이터가 교차하는 이미지 체계 속에서 현실의 흔적을 감지한다(배철, 서해근, 조정현). 현실을 은폐하거나 조작하는 미디어를 반문하며(안지원, 임은빈, 주진석),평화가 그 이름 아래 탈락된 자리와 애도하는 미술의 자리를 되짚는다(김소희, 최지수, 오상미). 몫 없는 자의 몫이 스스로 드러나는 순간(박정원, 한비롯), 우리는 비로소 타자를 마주하는 또 다른 관계의 가능성을 발견한다(이혜목, 비주얼 보이스). 

과거를 돌아보는 천사의 날개 너머 역사의 시간이 떠오른다(벤야민). 천사의 등 뒤로 인류가 축적한 파국의 현장이 한없이 펼쳐진다. 그러나 낙원에서 불어오는 거센 폭풍은 천사를 미래로 밀어낸다. 그에게 폐허를 수습할 시간은 허락되지 않는다. 역사는 미처 애도되지 못한 잔해를 떠안은 채 다음 시간으로 떠밀린다.

예술은 죽음을 되돌리지 못하고 잃어버린 몫을 복원하지 못한다. 그러나 폐허를 외면하지 않는다. 잔해 속에서 이름 없는 존재를 발견하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지워진 존재를 응시하며, 보이지 않던 관계를 드러내는 일. 예술은 역사를 감각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민족 또는 국가 단위의 군사적 충돌뿐만 아니라 타자의 삶을 소모시키는 사회적 구조, 인간을 침묵하게 만드는 제도와 권력, 혐오와 차별, 상실과 배제, 그리고 서로를 단절시키는 폭력이 이곳에서 폭로된다. 

폭풍은 지금도 우리를 미래로 밀어간다. 우리는 그 속도를 늦출 수 없다. 그러나 서로의 몫 일부를 기꺼이 나눔으로써 또 다른 폐허를 당연한 역사로 남겨두지 않는다. 전쟁의 기억을 함께 짊어지고, 타자의 상처를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이며, 도래하지 않은 평화를 함께 상상하는 일. 잠정적 공동체인 《반전 시도》는 이토록 무모한 모의 가운데 기꺼이 서로의 세계를 나눈다.


주차공간은 도보 5분 거리의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 주차장(종로구 혜화동 1-21, 10분당 800원) 또는 와룡공영주차장(서울 종로구 명륜길 26, 5분당 300원) 또는 명광교회 옆 공영 주차장(서울 종로구 성균관로 45, 1시간 3000원) 이용을 부탁드립니다. 

《on file》

《on file》  

📂 전시 기간: 2026. 7. 6.(월)~7. 26.(일)

* 화~일 오후 3시~8시

* 전시 오픈일 7월 6일(월)에는 정상 운영합니다.

📂 전시 장소: 요즘미술 (서울시 종로구 혜화로9길7, 3층)

📂 참여 작가: 백승환, 조수민

📂 기획: 박하은

📂 사진 촬영: 백승환

타일의 연쇄로 이루어진 균질한 바닥이 하나의 게임판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반복되는 칸들을 이어 임의의 경로를 설정해보거나, 줄눈을 피해 칸과 칸 사이를 건너뛰어보자. 의도치 않게 줄눈을 밟는다고 해도 특별한 불이익이 따르지는 않을 테니, 태연히 다음 칸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그만이다. 외부적으로 강요되지 않은 자의적인 규칙을 수행하며 몸은 의도와 우연한 실수 사이를 오가고, 예측과 대응을 전략 삼아 자신의 위치를 조정한다. 여기서 타일의 배열 자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중요하다. 결국 변하는 것은 주어진 타일을 통과하는 방식이다. 규제하는 동시에 생성하는 그리드(grid)로서 타일을 정의할 때, 평소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구조가 표면에 떠오를 것이다.

타일을 그리드로 바라보게 되는 전환의 감각을 보다 넓은 일상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 보자. 우리는 일상 역시 수많은 조건으로 구획된 구체적인 시공간임을 눈여겨보게 될 것이다. 공간을 나누는 경계, 시간을 반복적으로 구획하는 단위, 행위를 제한하는 규약 등 익숙한 나머지 좀처럼 의식되지 않는 조건을 전경으로 불러오기 위해 급진적인 전복까지 도모할 필요는 없다. 이미 작동하고 있는 질서를 새삼스레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규칙 하나면 충분하다. 백승환과 조수민이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규칙은 이러한 맥락에서 논의될 수 있다. 일상, 미술, 혹은 불가분하게 달라붙은 일상-미술을 규정하는 조건을 가시화하기 위한 규칙으로서 말이다.

조수민의 작업을 통해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내는 조건은 시간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조수민은 시간을 표준화하고 수치화하는 시스템에 주목한다. 예컨대, 〈On-Time Drawing / Waiting〉(2023-)은 디지털 시계의 뒷자리가 “00”을 표시하는 정각을 기준점 삼아 하루를 24번의 1시간으로 분절한다. 정각을 조금도 틀림없는 바로 그 시각이게끔 하고, 숫자와 알림으로써 표지하는 것은 추상화의 근대적 시간 체계의 산물이다. 자연에 없는 정각을 만들어 내는 시간 그리드로서 이 체계는 일상 전면에 침투하여 흐르는 시간을 구획한다. 하루를 59초와, 그 59초를 기다리는 59분 1초의 연속으로 경험하는 규칙을 세우며, 조수민은 인위적 시간이 지닌 조직과 구속의 힘을 가시화한다.

한편, 〈Office Depot (365)〉(2026)와 〈The Sky Shift〉(2024-)에서 시간 체계를 부단히 의식하려는 조수민의 시도는 한 시간, 하루의 반복으로 구축된 일 년이라는 상위 단위를 겨냥한다. 두 작업은 반복되는 하루, 그리고 매년 되돌아오는 365일을 (윤년이라면 366일) 비어 있는 칸으로 상정한 뒤, 이를 메우는 상반된 방식을 제안한다. 〈Office Depot (365)〉에서 그 칸을 차지하는 것은 조수민이 조교로 일하고 있는 학과 사무실 컴퓨터에 저장된 디지털 파일이다. 작성자를 추적하기 어려운 익명의 이미지이자, 제도로서 학과가 생산한 업무 기록은 생성 일자에 따라 선별되어 일 년의 달력을 구성한다. 그러나 20여 년을 가로지르는 데이터베이스로도 이 달력은 완전히 마감되지 않는다. 매년 법정 공휴일에는 학과가 운영되지 않고, 그렇다면 조수민이 수집할 파일 역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비어 있음은 학과 제도 바깥에서 발생한 예외가 아니라, 그 작동 방식에 내재한 휴지기에 연유한다. 〈Office Depot (365)〉는 빈칸을 남겨둠으로써 제도가 멈추는 순간마저 그 제도를 가동하는 조건임을 노출한다.

이와 반대로 〈The Sky Shift〉는 보다 개인적인 리듬을 지닌다. 매일 여섯 번에 걸쳐 촬영한 하늘을 타임카드의 칸 위에 딱 들어맞게 붙여가며, 조수민은 추상적인 일자가 아닌 빛과 어둠, 날씨를 압축한 물질적 표면으로서 하루를 제시한다. 구체적인 일상, 실질적인 세계의 변화와 동기화되며 균질한 시간의 격자는 저마다 다른 밀도를 간직하게 된다. 이렇게 두 작업은 서로의 반대편에 자리한다. 하나는 디지털 시스템과 제도의 시간을 기록하고, 다른 하나는 몸으로 감각한 하루를 쌓아 올리며 주어진 365일의 격자 위를 다른 보폭으로 걷는다.

여기서, 출발선과 결승선이 같은 위치에 놓인 반복의 구조를 따라 달리는 퍼포먼스를 기록한 〈Track Drawing (29′25″)〉(2024)은 오로지 시간 그리드에 초점을 맞추는 듯하였던 조수민의 작업을 다시 읽게 만든다. 마주 보고 있는 두 대의 모니터는 각기 트랙의 맞은편을 비추며, 프레임 밖으로 달려 나갔다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 제자리로 달려 들어오는 조수민을 보여준다. 체력이 소진되어감에 따라 그가 프레임에 등장하는 간격은 점차 넓어지며, 29분 25초가 지난 후 달리기는 완전히 멈춘다. 여기서 시간은 독립적인 조건이라기보다 트랙의 길이와 몸의 운동량에 의해 역산되는 값에 해당한다. 몸과 공간, 호흡과 피로가 서로를 규정하는 관계를 몸의 이동으로 번역하며, 조수민은 여러 조건이 불가분하게 얽힌 복잡한 일상의 그리드를 파악한다.

조수민에게 일상-미술을 매개하는 삶의 조건을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다면, 백승환에게 사진은 작업의 매체이자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서 그 무엇보다 각별하다. 여러 갈래로 분기하는 사진의 조건을 확인하고, 그 조건들이 도출하는 사진의 가능성을 하나씩 검토하는 일은 백승환의 작업을 견인하는 동력이다. 그러나 투명한 지표와 반투명한 이미지 사이에서,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서, 기록과 예측 사이에서 증식하는 사진의 그리드를 온전히 밟아나가기란 불가능할지 모른다. 이제는 알 듯하다고 생각했을 때 곧장 손아귀를 벗어나 버리는 사진의 유동성까지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생성되는 사진의 조건들을 기꺼이 검증하고자 하는 태도는 백승환의 힘이다. 백승환의 관심은 한 장의 사진만큼이나, 그 사진이 생산되고 수용되는 과정을 탐구하는 지점에 있다. 카메라는 언제 세상을 기록하는가, 프레임은 무엇을 잘라내고 무엇을 걷어내는가, 사진은 말없이 거기-그때를 지시할 수 있는가, 아니면 언제나 의미화의 문턱에 서 있는가. 이러한 질문을 단일한 답변으로 정박시키기보다, 백승환은 매번 각기 다른 규칙을 지침 삼아 흔들리는 사진의 조건을 되묻는다.

Hovering (2022) 시리즈는 왜곡도, 사심의 개입도 없이 현실을 그대로 포착하는 것이 사진의 본질이 될 수 있다면, 이를 위해서는 카메라 뒤에 자리한 촬영자의 존재가 희석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 시작하는 듯하다. 지하철 출입문이 열리고 닫히는 때에 맞춰 그 문의 너머를 촬영하고, 김이 서린 거울 앞에서 20일간 매일 셔터를 누르는 규칙을 세움으로써 백승환은 뷰파인더에 들어오는 장면에 대한 선택을 최대한 유예한다. 지하철 출입문과 셔터의 움직임이 비유적으로 연동되고, 비슷한 구도로 촬영된 20일간의 거울 기록이 행렬을 맞출 때 사진으로부터 의미를 선취하려는 충동은 조금씩 휘발된다. 규칙과 그에 기반한 반복으로써 저자성을 카메라에 양도하는 상황을 가정하며, 백승환은 현실을 무사심하게 분절할 수 있다고 믿어지는 사진의 작동 방식을 확인해 본다.

한때 아르바이트를 하던 빵집의 한 단면을 발목 정도 높이에 설치된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로우 파일로 삼는 〈Making New Sequence〉(2021)는 기기의 위치를 잡는 초기 단계 이후로는 더 이상 촬영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Hovering 시리즈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진가의 의지와 사진을 분리해 낸다. 그러나 이 작업은 극적인 자동화와 객관화를 넘어, 사진의 또 다른 조건을 가늠한다는 점에서 조명될 필요가 있다. 사진은 직사각형의 프레임으로써 움직이는 세계를 멈춰 세우지만, 역으로 세계는 무한히 확장되는 시공간을 암시하며 사진을 프레임 바깥으로 접속시킨다. 로우 파일로부터 발걸음만을 추출해 필름에 고정하고, 라이트박스 위에서 필름들을 겹쳐 보는 백승환의 작업은 사진이 함축하는 시간성을 재고하게 한다. 정지된 프레임은 서로를 통과하며 미세한 움직임을 품기 시작하고, 겹친 필름 위에서 발걸음들은 서로를 스쳐나간다. 1초에 24장의 사진을 재빠르게 줄 세우며 운동의 환영을 유도하는 영화가 되지 않으면서도, 천천히 필름 위로 또 다른 필름을 올려보는 백승환의 시도는 하나의 새로운 시퀀스를 이룬다. 단일한 프레임 속에 멈추어 있던 현실의 시간은 프레임과 프레임이 접촉할 때 아주 잠시, 그러나 분명히 흐른다.

사진의 생산 과정뿐 아니라 그것이 수용되는 방식은 백승환의 시선을 끈다. 〈삼십육까지 세어보기〉(2023)에서 사진과 (컨)텍스트의 관계를 엮어내며 그는 얇은 사진의 표면에 의미의 두께를 더하는 맥락들을 불러온다. 이때 백승환은 필름 한 롤에 들어 있는 컷의 수, 서른여섯이라는 물리적 조건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일상 가운데 하나부터 서른여섯까지의 숫자 하나하나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촬영되며, 그 장면에 대한 짧은 글이 사진의 현상에 앞서 작성된다. 이미 완결되어 버린 텍스트는 이후 정착될 사진을 정확히 예고하지도, 충실히 설명하지도 않는다.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 길을 걷던 중 문득 떠올린 생각, 캠퍼스를 배회하는 들개와 마주치고 싶었던 바람과 같은 작은 단상들은 프레임과 그저 느슨하게 포개질 뿐이다. 사진은 여전히 현실을 가리키는 지표지만, 언어와 기억을 호출하는 하나의 계기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사진의 생산과 시간성, 의미화의 조건 사이를 오가며, 백승환은 사전에 설정한 느슨한 구도를 따라 매체로서의 사진을 비스듬히 짚어 나간다.

백승환과 조수민이 제안하는 규칙은 완결을 보장하지 않는다. 완벽히 들어맞아야 한다는 강박 대신, 예외와 실패를 솔직히 고백하며 이들은 규칙의 틈 사이로 채워지지 않은 칸, 끝내 수행되지 못한 시간, 예기치 않은 우연을 흘려보낸다. 〈삼십육까지 세어보기〉는 필름 한 롤의 컷 수를 규칙으로 삼지만, 전시장에는 오로지 스물여섯 쌍의 텍스트와 사진이 놓여 있을 뿐이다. 끝내 적절한 장면을 만나지 못한 숫자의 자리는 빈칸 그대로 남아 그 조우의 실패를 고백한다. 정각을 놓쳤을 때, 조수민은 앞선 작업에서 놓쳐 버린 시간을 억지로 만회하지 않는다. 대신, 정확히 일 년 뒤, 같은 날짜와 같은 시간에 맞춰 공공장소에 놓인 시계를 찾아간다. 일 년 전 자신이 ‘정각을 놓친 시간’을 그곳에서 지켜보고 있었을 목격자-시계의 자리에 자신을 다시 위치시켜 보는 것이다. 되돌아온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공공 시계의 위치를 확인하고, 정각 이전에 그곳에 도착할 수 있도록 이동 경로를 계획하며, 조수민은 수행되지 못한 과거의 시간을 새로운 현재 속에서 다시 가동한다. 틀에 가둘 수 없는 과거를 지금으로 소환하는 것은 백승환의 〈잔여들〉(2026)도 마찬가지다. 10여 년 전 사회정치적 맥락을 되짚으며 촬영했던 다큐멘터리 사진은 더 이상 원래의 맥락만으로 환원되지 않고, 그 위로 더해진 시간의 두께에 눌리며 기억으로 전환된다. 규칙과 의도의 틀로는 온전히 포착되지 않는 것들은 과거를 증명하는 기록으로 머무르지 않고, 예기치 않게 현재를 찾아오는 움직이는 잔여가 된다. 사진이 붙잡았던 그때는 지나갔지만, 그 흔적은 잔상처럼 눈앞에 떠오르며 과거를 이미 끝나버린 시간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이처럼 규칙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미완의 상태를 보존하는 장치일 때 의미를 지닌다. 놓친 정각, 비어 있는 자리는 실패를 드러내는 표지가 아니라 다음 시도를 위한 작은 참조점이며, 규칙이 포착하지 못한 잔여는 다음 시도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단서가 된다. 완결된 기록을 보관한다는 의미보다, 아직 효력을 다하지 않는 가능성들을 섣불리 폐기하지 않는 태도를 가리키기 위해 이 전시에 on file 이라는 이름을 붙여본다. 우리를 둘러싼 조건은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고, 규칙은 그 변화를 끝내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조건을 의식하게 하는 규칙을 세우는 일만큼이나, 그 틈으로 빠져나간 것들을 다음 걸음의 참조점으로 남겨두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바닥 위를 걷겠지만, 그 참조점들이 익숙한 경로를 되짚는 발걸음에 작은 마찰을 가하리라 믿어본다. 그때에는 같은 곳을 걷더라도, 더 이상 이전과 같은 걸음으로 통과하지는 못할 것이다. (글. 박하은)


주차공간은 도보 5분 거리의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 주차장(종로구 혜화동 1-21, 10분당 800원) 또는 와룡공영주차장(서울 종로구 명륜길 26, 5분당 300원) 또는 명광교회 옆 공영 주차장(서울 종로구 성균관로 45, 1시간 3000원) 이용을 부탁드립니다. 

《출렁이는 어떤 빛나는 어둔-부엌과 암실 사이에서》 박영선 개인전 

《출렁이는 어떤 빛나는 어둔-부엌과 암실 사이에서》

박영선 개인전 

전시기간: 2026. 3. 27.(금)~4. 26.(일) 매주 월요일 휴관

전시장소: 요즘미술, 요즘미술일층(서울시 종로구 혜화로 9길 7)

전시시간: 오후 2시~7시 

문의전화: 02-6958-5753 

▤ 요즘미술(3층) 상영시간:

 – 화~금(1회): 5시~5시 20분

 – 토~일(3회): 3시~3시 20분/ 4시~4시 20분 / 5시~5시 20분

  • 요즘미술(3층)의 전시 상영은 슬라이드 프로젝터로 진행되며, 구형 할로겐 조명을 사용합니다. 전 세계적인 전쟁 상황으로 인해 해당 조명의 수급이 어려워진 관계로, 전시 기간 동안 조명을 최대한 아껴 사용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에 부득이하게 상영 시간을 제한적으로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관람객 여러분의 너른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 오프닝 퍼포먼스: 2026. 3. 27.(금) 오후 5시. 요즘미술(3층)

▤ 공연: 〈x@요즘미술일층〉, 박영선+진상태

2026. 4. 10.(금) 오후 8시

2026. 4. 11.(토) 오후 7시

요즘미술일층

관람료 예매 15,000원 / 현장판매 20,000원

예매방법: 예매 종료, 현장판매는 당일 입구에서 카드 결제

▤ 작가와의 대화: 2026. 4. 25.(토) 오후 3시. 요즘미술일층, 박영선+박지수(보스토크 매거진 편집장)

▤ 협업작가 : 진상태, 이윤수

▤ 도움주신 분 : 정정화, 지그프리드 쾹프, 임원영, 강홍구, 함성호, 김학량, 권병준, 서해근, 이영호, 이인협, 이정근,  황귀영, 이윤수, 박용석, 김세빈, 루시, 오선재, 양순보

▤ 기획: 요즘미술


박영선은 자연과 생생을 따르는 동아시아의 산수적 세계관 전통, 그리고 수학적 연산과 사진적 재현기술로 세계를 구성/재구성하는 서유럽 근대성 사이 심연에서 진동하며 창작과 연구를 병행해왔다. 카메라 장치를 배제하고 사진 매체에 잠재된 물질적 유동성과 탈주체성을 비인간 행위자들의 참여에 기대어 탐색하는 암실 작업, 그리고 아날로그/디지털사진과 영상, 글, 소리, 냄새 등 여러 매체를 충돌시키며 그 사이 여백을 찾는 탈장르적 설치와 퍼포먼스를 장소특정성에 연결지어 시도하는 중이다. 그럼으로써 작가의 주체성과 개인성을 덜어내고 장소-관객-청중과 함께 물질-비물질 행위자들이 생생하는 찰나적 사건과 조우하는 어떤 (불)가능한 체험-이야기를 모색한다. 중고 올림푸스팬 하프 사이즈 카메라로 만든 짝틀사진들을 발표하며 미술계에 데뷔하여 6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몇몇 기획전과 공연에 참여했다. 사진 미디어와 카메라 장치를 둘러싼 문화 현상, 그리고 사진과 카메라를 창작 매체로 사용하는 작가들의 예술실천에 관한 평문과 논문 들을 썼다. 


작가 머리말
바깥의 집에서 바깥의 집에게

홍성에서 여러 해 살다가 작년 이맘때 서울 변두리 동네에서 살기 시작했다. 세든 집은 1970년대에 지은 단독주택의 2층. 40년간 거의 보수를 하지 않고 방치된, 그러나 여전히 어떤 가난한 사람들이 세들어 살아온 집이다. 어떤 것도 완벽히 봉합되거나 매끄럽게 마감된 것이 없고 대부분 틈이 벌어져 흔들리고 덜컹거렸다. 그 틈으로 다종다양한 벌레들이 기어나오고 베란다에는 벌들의 오래된 집이 윙윙대며 매달려 있었다. 나무 천장에서는 오래된 먼지와 못들이 떨어져 내렸다. 단열과 방음, 동선의 편리함과 기능성을 높여 철저한 ‘안’의 공간으로 기획된 아파트식 주거지에 어느새 나는 길들여져 있었다. 이 집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 개념적으로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폐허에 던져진 느낌이었고, 죽음의 공포까지 불러일으켰다. 어느날 나는 새 공책 표지에 ‘바깥의 집’이라는 표제를 썼다.

이번 전시는 지난 한해 동안 안과 바깥이 혼재하고 교차하는 이 낡은 집에서의 생존(을 위한) 생활로 인해 가능해졌다고 느낀다. 옆집의 항의를 피하기 위해 창문을 닫은 집 안 책장에서 골라내어 틀던 음악들이 아닌 만물 만사의 우렁차고 미묘한 소리가 이 집에서는 창문을 굳이 열지 않아도 들린다. 벽과 창틀 틈 사이로 스며드는 빗물바람햇빛의 운동을 응시하고 그 속에서 공벌레거미개미들과 함께 그들처럼 움직거리고 꿈틀거리며 내 몸과 마음에도 어떤 틈들이 열리고 새로운 느낌들이 닿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난 일년은 이 희귀한 바깥의집에 나의 생존과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안을 만드는 시간이기도 했다. 마침내 해를 넘긴 뒤에야 부엌 입구에 암실을 꾸릴 수 있었고, 이전 암실 작업과는 다른 느낌과 태도로 사물들을 바라보고 작과 업이라는 것을 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 준비는, 지금 거기에 담겨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여기 이 바깥의 집에서 생활하며 내게로 건너온 만물만사의 소리들 가락들 내 몸에 번지는 느낌들 떠오르는 생각들이 전시장이라는 곳에 작품이라는 명목으로 어떻게 이행되고 변주될 수 있을까를 자문하며 시작했다. 프로젝트 방식의 작업, 그리고 그 작업 과정을 완결하는 결과물로서의 완성도 높은 작품 게시 등, 창조적 주체로서의 개인이 여전히 강조되는 개인전 형식 등 늘 어색해하면서도 나 역시 받아들여온 미술계에 미만한 예술창작발표 프로그램으로부터 비껴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개인전이라는 명목임에도 함께하고 공감하는 작가와의 공동전이기도 하고 전시이면서 공연이기도 하고 생활이기도 한 그런 유동하는 모양이기를 바라면서. 부엌과암실과요즘미술일층과요즘미술삼층을 오가며 전시라는 것이 여러 물과 사가 생생하며 그 소리가 명멸하는 때와의 만남일 수 있길 바라면서. 전시장의 어떤 곳을 채우다가 다시 비우다가 다시 바꾸다가… 그러며 움직여왔다. 이 운동이 한 달의 전시 동안에도 지속되기를 바라며 진행형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굳은살 박힌 내 몸의 느낌을 일깨우고 큰 가르침을 준 (잠시 내가 깃든) 바깥의 집, 이 희귀한 집의 느낌을 받아들여주며 나를 비롯한 모든 청중과 관객, 참여자들의 안에 또 다른 바깥을 펼쳐줄 요즘미술일층과 요즘미술이라는 장소에 경의를 표한다.

2026.3. 27 아침 박영선


〈흙물빛바람―루시와 선재가 유기농법으로 길러서 보내준 채소다발〉2026, 105×134.4cm, 포토그램+피그먼트프린트

몇 년간 홍성에 살면서 인연을 맺은 친구 루시와 선재는 지금도 자신들이 농약과 화학비료를 치지 않고 정성스레 가꾼 채소들을 보내준다. 택배 상자를 열고 포장을 풀면 꽃다발보다 더 아름답게 가지런히 챙겨 얹은 가지각색의 채소들을 보면서 받는 느낌은 형언하기 어렵다. 너무 풍성해 그 모두를 인화지 위에 얹을 순 없지만, 그들의 선물에 대한 고마움과 채소들의 아름다움과 감탄스러운 향기로움, 루시와 선재의 흙물 든 손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몇 포기를 나눠 암실로 가져가서 포토그램을 만들었다. 드럼 스캔과 디지털 프린트 등 후처리 과정을 거쳐 하나의 대형사진을 만들었다. 〈흙물빛바람〉 연작은 루시와 선재가 보내준 채소에서 받은 느낌과 요즘미술 전시를 계기로 시작한 새 연작이다.

〈흙물빛바람―구멍들〉2026, 각105×134.4cm, 딥틱, 포토그램+피그먼트프린트

돌아가신 어머니가 김장 김치 눌러놓을 때 쓰라고 20여 년 전에 물려주신 둥글고 아름다운 차돌, 여러 산과 들판을 산책하며 들고 온 느낌 닿는 돌멩이들, 부서져가는 낙엽들열매들, 부엌에서 말라가는 삶은 고구마와 요즘미술 마켓에서 이윤수 작가에게 15,000원에 구매한 작품 〈I am eating〉의 설치물로 사용되었던 사과 등을 암실 인화지에 올려두고 성냥불과 손전등을 써서 만들었다.

〈폐허에서―One or two very hungry caterpillar(s)〉2026, 60x160cmx2, 12개의 포토그램+피그먼트프린트, 비닐 포장재

암실 책상에 흘러내리는 인화액들을 흡수할 누런 종이를 신창시장에서 사왔다. 종이들을 팽팽하게 감싼 두껍고 기다란 비닐을 힘겹게 뜯어내는 동안 어떤 느낌이 떠올랐다. 암실로 들어가 인화지 위에 벌레처럼 뜯긴 기다란 비닐을 올려놓았다. 그러나 포토그램에서는, 확대기를 통해 빛을 계량한다 해도 현상-정지-정착 과정을 거치고 암실의 불을 켤 때까지는 거기에 담긴 형상을 예측할 수 없다. 불을 켜고 정착된 인화지에서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에서 본 그 입 같기도 하고 절단된 내장 같기도 하고 벌레 같기도 한 괴물의 형상을 발견하며 경이로움을 느꼈다. 하나의 뜯긴 비닐 포장지로 만들어진 하나인지 둘인지 확인(언)하기 어려운 형상(들)을 담은 포토그램 12장을 6장씩 나누어 요즘미술일층의 전시장 내부 벽과 유리창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붙였다. 제목은 3층 작은 방에서 상영되는 협업작품 제목 〈I am eating〉에 비스듬히 반응하는 뜻을 담아 영어로 표기했다. 2022년부터 지속 중인,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재들을 암실로 들여와 작업하는 포토그램 연작 〈투명한 것들의 나날〉에 속한다.

〈투명한 것들의 나날―열 개의 낡은 창문을 열기 위한 손잡이들〉2026, 네폭사진, 153.5x488cm, 포토그램+피그먼트프린트

이사 온 집 오래된 갈색 나무틀에 끼워진 간유리 창들은 거의 열리지 않거나 안간힘을 써야 조금 열 수 있었다. 창문틀에 손잡이를 달아보기로 했다. 신창시장에 가서 희고 검은 알미늄 손잡이들을 사왔다. 플라스틱 포장을 뜯는데 언제나처럼 어떤 느낌, 생각들이 떠올랐다. 암실에서 손잡이 포장재를 모두 겹쳐 포토그램을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 방향을 바꾸어 모두 네 개의 포토그램을 만들었다. 신쾌동의 힘찬 거문고산조를 들을 때마다 받던 느낌이 떠올랐다. 후처리 과정을 거쳐 네 개의 프린트를 하나의 대형사진처럼 설치했다. 포토그램 연작 〈투명한 것들의 나날〉에 속한다.

〈두 개의 사과와 한 개의 양파 변주〉2026, 가변크기, 설치, 나무액자에 넣은 34개의 포토그램, 포토그램들을 남기고 변모 중인 실제의 사과와 양파.

이윤수 작가의 〈I am eating〉에 설치되었던 사과 한 알과 부엌에 둔 유기농 사과 한 알을 나란히 부엌 책상에 올려두었다. 작품의 일부였던 탓일까 먹을 생각이 나지 않았고, 먹으려고 샀던 유기농 사과조차도 먹을 마음이 나질 않아 서늘한 곳에 모셔놓고 여러 달 동안 날마다 문득문득 바라보았다. 하나는 갓 딴 사과인양 싱싱함을 유지하고 하나는 쪼글거리며 말라갔다. 이 사과 둘을 지켜보다가 ‘변주’의 형식으로 포토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어져서 시작하게 되었다. 예측가능한 결과를 위해 표준화된 광량을 제어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인 확대기 타이머에 굳이 의존하지 않고 작업하는 계기가 되었다. 성냥불과 손전등 빛 등 보다 직접적이고 무모하고 덜 통제되고 덜 균질화된 성격의 빛으로 사물들을 비춰보게 되었다. 이 빛들은 빛의 양과 세기, 방향, 시간 등을 거의 통제할 수 없거나 한다고 해도 균질적일 수가 없다. 사과 변주 작업을 일단락하고 마지막에 냉장고에 있는 장아찌용 조그만 양파를 가져와 인화지에 올려 두 개의 포토그램을 만들었다. 작업 후 양파를 암실에 둔 채 잊고 있었다. 어느 날 암실 구석에서 푸른 싹을 틔우며 누워 있는 양파를 발견했다. 요즘미술일층 오른쪽 창문 옆에 걸린 바로 그 양파의 포토그램 옆 창가에 가져다 놓았다. 그 두 개의 사과도 왼쪽 창가에 올려두었다. 농익고 물러가는 사과에서 깊은 향기가 난다.

오프닝 퍼포먼스

처음에는 개인전이라는 명목과 관습에 맞게 혼자서 하려 했다. 생각이 바뀌었다. 협업작가와 함께 하는 것이 이 전시의 뜻에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퍼포먼스의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서로 조정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폐허에서―돌과사과〉2026, 가변크기, 4대의 슬라이드 프로젝터, 흑백/컬러 네가필름, 사과, 돌

슬라이드 프로젝션과 슬라이드 이미지들에 담긴 실제 사물로 이뤄지는 설치작이다. 2022년부터 시작한 슬라이드 프로젝터와 다른 매체들을 결합하는 설치퍼포먼스 연작 〈폐허에서〉에 속한다. 일층의 〈두 개의 사과와 한 개의 양파 변주〉에 나오는 사과 두 개, 어머니가 남겨주신 둥근 돌을 비롯해 오래 부엌과 책상, 창틀 한켠에 두고 보아오던 돌들, 이사 와서 초안산 산책에서 만난 돌들의 흑백과 컬러 네가 이미지로 구성되는 슬라이드 쇼와 실제 사과와 돌로 이뤄진다. 전시 기간 중 공지된 공연 외에도 몇 번의 퍼포먼스가 슬라이드 프로젝션과 함께 이뤄질 예정이다. 

〈부엌과 암실〉

3층 전시장의 방 하나를 실제 암실로 만들고, 부엌에 있던 돌과 사과(슬라이드 프로젝터들을 통해 그 네가티브 이미지가 명멸하는)들을 비롯한 여러 사물을 번갈아 인화지 위에 얹어 하루 또는 며칠 동안 둔다. 암실 바깥의 슬라이드 프로젝터들이 작동할 때 흘러들어오는 빛으로 노광된 인화지를, 전시시간 시작 전이나 후에 현상정착해서 암실 한쪽 벽에 붙여나간다. 밀폐된 어둠으로 봉인된 전형적인 안의 공간인 암실을 작업 수행 장소이자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설치 장소로 포개본다. 그 포개진 주름으로부터 안의 바깥, 바깥의 안의 느낌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협업작가 소개: 진상태 Jin Sangtae

사물/공간의 흥미를 음악/음향적 경험에 녹여 유·무형의 음악을 만들어 오고 있다. 오랜 시간 연주해 온 발음체인 하드디스크와 피드백, 그리고 이를 매개하는 사물 간의 관계와 청취를 기반으로 작업한다. 매일 1분씩 녹음·공개 중인 작곡 작품 <Y.ear>를 2015년부터 수행 중이며, 시각예술가 김인경과의 오디오비주얼 프로젝트 ‘중간자 Joongganja’로도 활동 중이다.

2006년 공간 ‘닻올림’을 설립하여 공연 시리즈 ‘닻올림 연주회’, 페스티벌 ‘닻올림픽’, 워크숍 ‘닻올림 협연 모임’을 이어오며 기획자이자 연주자로 참여하고 있다.

협업작가 소개: 이윤수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여러가지 관계나 조건들을 평소와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보는 것에 흥미가 있다. 2024년 공간 형에서 개인전 《Who do you》를 개최한 바 있다. 


주차공간이 협소하므로 차량을 이용하시는 관객께서는 도보 5분 거리의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 주차장(종로구 혜화동 1-21, 10분당 800원) 또는 와룡공영주차장(서울 종로구 명륜길 26, 5분 300원) 또는 명광교회 옆 공영 주차장(서울 종로구 성균관로 45, 1시간 3000원) 이용을 부탁드립니다.

《기억의 형성과 계승》 신광 개인전

《기억의 형성과 계승》 신광 개인전

전시기간: 2026. 1. 26.(월)~2. 26.(목)

전시장소: 요즘미술(서울시 종로구 혜화로 9길 7, 3층)

전시시간: 오후 12시~6시 

문의전화: 02-6958-5753 

▤ 오프닝:  2026. 1. 26. 오후 3시

▤ 휴관일: 2026. 2. 16. ~ 2. 18.(설날연휴) / 매주 월요일

▤ 작가와의 대화: 2026. 2. 14. 오후 2시, 선착순 20명

▤ 기획: 요즘미술

▤ 후원: 이반미모

신광 작가는 정체성이 환경에 의해 구성되는 측면을 다각도로 탐구해왔다. 이번 개인전 《기억의 형성과 계승》은 정체성이 형성되는데 기원이 된 장소에 대한 이야기 <선녀>와 정체성이 전수되고 이어지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담은 〈놀이터〉, 〈줄서기〉 그리고 자신의 학생들이 미술 전시를 하며 일어난 흔적을 소재로 구성한 〈선택과 미술작품〉이 소개된다. 

〈선녀〉 2025, 행위를 기록한 영상, 싱글채널, 46분53초

연길(내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에는 두 개의 ‘선녀’ 조각상이 있다. 하나는 연길 기차역 광장에, 하나는 연길 공원에 있다. 이 두 조각상은 나의 기억이 있을 때부터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모두 조선족 전통 복장을 한 여성 형상들이다. 어렸을 적 누가 이 조각상들에 대하여 말해준 적은 없었지만, 나는 이 형상이 ‘선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조각상들은 묵묵히 내 머릿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연길은 부르하통하라는 강을 경계로 하남, 하북으로 나뉜다. 조각상 하나는 하북, 하나는 하남에 자리하고 있다. 〈선녀〉작업은 어렸을 적 그렇게 멀게 느껴졌던 이 두 조각상을 빨간 실선으로 이어놓는 행위 작업이다. 

〈놀이터〉 2025, 사진, 29,7x21cm

우리 부부 사이에는 딸아이 한 명이 있다. 2015년 한국에서 태어나 만 2세를 갓 넘긴 2017년에 중국에 왔다. 나는 딸아이와의 관계에서 ‘기억의 계승’과 정체성이 형성되는 접점을 찾으려고 한다. 

이 작품은 나와 딸아이가 함께 놀던(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장소(놀이터)들에 대한 기록 사진이다. 인물이 배제된 수십 장의 기록사진들의 연결고리는 나와 아이의 공통된 경험을 전제로 한다. 조선족인 우리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딸아이는 아직 정체성 고민을 깊이 하지 않는다. 나의 선택에 의한 공통된 경험, 이 경험을 통해 아이도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줄서기〉 2026, 설치, 가변크기

딸아이가 태어나서 18개월쯤에 나는 아이에게 형상이 비슷한 여러 가지 색깔의 장난감 인형을 사주었다. 아이는 그 장난감들을 줄 세워 놓으면서 놀기를 좋아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많은 장난감을 사주었다. 딸아이가 커가면서 장난감의 수도 쌓여갔다. 18개월 된 아이가 어떤 이유에서 그 장난감들을 줄 세웠는지 알 수는 없으나, 나는 이번 전시에서 그의 원초적인 행위를 모방한다. 나는 전시 기간 동안 딸아이의 장난감들을 모두 대여했다. 그리고 전시장에 그것들의 줄 세우기를 시도한다. 

〈선택과 미술작품〉 2026, 사진 설치 벽화, 가변크기

이 작업은 2018년 내가 중국으로 돌아온 뒤 연변대학 미술학원에서 교직을 맡으면서 겪은 경험과 관계된다. 미술학원에는 학원이 운영하는 미술관이 있다. 학생들의 졸업 전시가 끝나고 작품을 철수하면서 벽면에 페인트가 떨어진 자국들을 남겼다. 그 자국들은 여러 가지 형상들을 상상하게끔 했다. 나는 그 자국들을 측량한 후 액자를 씌워 나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이번 작품은 이 작업의 연장으로 두 개 부분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원작품의 사진 이미지이고, 다른 하나는 페인트가 떨어진 흔적을 벽화로 재현한 이미지이다.


주차공간이 협소하므로 차량을 이용하시는 관객께서는 도보 5분 거리의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 주차장(종로구 혜화동 1-21, 10분당 800원) 또는 와룡공영주차장(서울 종로구 명륜길 26, 5분 300원) 이용을 부탁드립니다.

윤소린 개인전 《돌봄 유지 보수》

윤소린 개인전 《돌봄 유지 보수》

Solin Yoon Solo Exhibition: Care and Maintenance

전시기간: 2025. 9. 25.(목)~10. 30.(목)

전시장소: 요즘미술 + 요즘미술일층 (서울시 종로구 혜화로 9길 7, 1층/3층)

전시시간: 오후 1시~7시 

문의전화: 02-6958-5753 

[주최] 요즘미술

[기획/전시] 윤소린

[디자인] 맹성규

[전시설치/제작도움] 김순모, 김한울, 이윤수, 황귀영

[프로젝트진행 및 기술도움] Tomoko Sato & Issei Yamagata

[일한 번역] 콘노 유키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요즘미술

“이 사업/작품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 ‘2025년 다원예술 창작산실’ 지원을 받았습니다”

거리-갖기

《돌봄 유지 보수》 전시는 동시대 아시아 여성의 시선으로 ‘돌봄’의 상상력을 탐구한다. 작가에게 돌봄이란 불가피한 심리적·신체적 노동이자 생존의 문제인데, 전시에서는 이를 개인의 안녕을 살피는 현대적 돌봄의 두 양상 ‘탈-친족관계’와 ‘탈-인간관계’라는 조건에서 재해석한다. 특히, 의존과 거리의 역설적 관계 ― 의존이 주는 정서적 안녕과 동시에 남겨지는 신체적·감정적 자국 ― 을 통해 ‘어디까지 의존할 수 있고, 무엇까진 대체 불가능한지’ 질문한다.

전시에 포함된 작품들은 관습적이지 않은 돌봄 관계가 형성되는 삶의 순간과 그 안에서 유지되는 ‘거리’의 개념을 드러낸다. 여기서 말하는 ‘거리-갖기’는 거리 두기를 통한 단절이나 배제가 아닌, 혹은 단순히 기술적 대체 가능성이나 차가운 분석도 아닌, 상대와 맺고 있는 관계의 진심과 그 ‘거리’의 의미를 관찰하는 것이다. 언어와 문화의 경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도 발현되는 이러한 ‘거리-갖기’는 타인을 이해하는 새로운 접근이 되며,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본 관습적인 돌봄 관계의 재배치 가능성을 제안한다.

Holding the Distance

Care and Maintenance explores the idea of “care” from the perspective of contemporary Asian women. For the artist, the psychological and physical labor of caring is an unavoidable part of life and a matter of survival. The exhibition re-examines personal well-being under post-kinship and post-human relationship conditions. At its core lies the paradoxical relationship between dependence and distance — how dependence can offer emotional well-being while leaving physical and emotional marks. The exhibition asks, how much can we rely on others and what is irreplaceable?

The works present moments in which unconventional care relationships form and maintain within them the concept of “distance.” Here, “Holding the Distance” does not refer to separation or exclusion, nor is it simply a detached technical analysis. Rather, it is the observation of sincerity and the meaning of that “distance” in a relationship. Even, across linguistic and cultural boundaries, “Holding the Distance” proposes a new access point to understanding others, and suggests the possibility of reconfiguring conventional ideas about care from a female perspective.


주차공간이 협소하므로 차량을 이용하시는 관객께서는 도보 5분 거리의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 주차장(종로구 혜화동 1-21, 10분당 800원) 또는 와룡공영주차장(서울 종로구 명륜길 26, 5분 300원) 이용을 부탁드립니다.

《무지개처럼, 우리는 하나가 아니기에 아름답지 않은가.》

요즘미술 협력

《무지개처럼, 우리는 하나가 아니기에 아름답지 않은가.》

Isn’t it Beautiful, Like a Rainbow, That We Are Not One.

이반미술모임 15주년 기념전

기획: 오인환

장소: 요즘미술(서울시 종로구 혜화로 9길 7, 3층)

전시기간: 2025. 9. 6.(토)~9. 19.(금) 휴관일 없음

전시시간: 오후 2시~8시 

전화: 02-6958-5753 

《무지개처럼, 우리는 하나가 아니기에 아름답지 않은가.》는 참여자들이 일상 속 물건들을 무지개 색으로 배열하고 이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참여형 미술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오인환의 기획 아래, ‘이반 미술 모임(이반미모)’의 회원들이 함께 참여하였다.

게이(이반) 참여자들이 자신의 물건들로 무지개를 재현하는 행위는,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가 겪는 익명성과 함께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예술적 표현이다. 동시에 이 과정은 무지개라는 기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것이기도 하다.

각자가 만든 무지개는 사용한 물건의 종류, 색상, 배열 방식, 상태에 따라 저마다의 개별성과 감각을 드러낸다. 이는 ‘무지개’라는 하나의 상징이 오히려 하나로 수렴될 수 없는 다양성과 차이의 집합체임을 보여준다. 이는 ‘다름’을 통해 생성되는 공동체의 형상을 제시하며, 정체성의 획일화를 거부하고 차이의 공존을 지향하는 것이다.

《무지개처럼, 우리는 하나가 아니기에 아름답지 않은가.》는 무지개를 특정 집단의 정체성을 단순화하거나 획일화하는 상징이 아니라, 통합될 수 없는 퀴어 공동체 내부의 다채로운 목소리와 개별성을 드러낸다. 이는 동질성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 개념을 넘어, 시민 사회 전체의 다원성과 다양성을 사유하도록 유도하는 비판적 시선을 제공하는 것이다.

Isn’t It Beautiful, Like a Rainbow, that We Are Not One. is a participatory art project that invited individuals to select ordinary objects from their everyday lives and reconfigure them into chromatic sequences mirroring the spectrum of the rainbow, with the resulting assemblages documented through photography. Conceived and organized by Inhwan Oh, the project was realized in collaboration with members of Iban Art Gathering (Iban Mimo).

For gay (iban) participants, the act of reconstructing the rainbow through their own belongings functions at once as an artistic articulation of queer identity—performed under the condition of anonymity that sexual minorities must often negotiate within Korean society—and as a subtle gesture of disclosure. In this way, the project reimagines the rainbow as a signifier, reframing its symbolic resonance through the lived materiality of the everyday.

Each rainbow, shaped by the kinds of objects chosen, their colors, arrangements, and conditions, discloses its own individuality and sensibility. Considered together, these variations demonstrate that the “rainbow” as a symbol is less a unified emblem than an assemblage that resists convergence into fixed meaning. What emerges instead is the figure of a community constituted through difference—one that rejects the homogenization of identity and aspires toward the coexistence of multiplicity.

Thus, Isn’t It Beautiful, Like a Rainbow, that We Are Not One. positions the rainbow not as a simplified or homogenized emblem of collective identity, but as a prism refracting the multiplicity of voices and individualities within a queer community that cannot be reduced to unity. In doing so, it moves beyond a conception of community grounded in sameness, offering instead a critical perspective that prompts reflection on pluralism and diversity across the fabric of civil society.


주차공간이 협소하므로 차량을 이용하시는 관객께서는 도보 5분 거리의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 주차장(종로구 혜화동 1-21, 10분당 800원) 또는 와룡공영주차장(서울 종로구 명륜길 26, 5분 300원) 이용을 부탁드립니다.

《미미 토토 해피》 한옥미 개인전

요즘미술 기획

《미미 토토 해피》한옥미 개인전

Okmi Han Solo Exhibition: Mimi Toto Haepiya

전시기간: 2025. 6. 14.(토) ~ 6. 29.(일)  휴관일 없음

전시시간: 오후 1시 ~ 7시 

* 2025. 6. 14.(토) 오후 5시 open

전시전경

작곡가 한옥미는 자신의 음악회에서 죽음, 혼란, 기억, 쉼 등의 주제로 음악적 구조를 실험하거나 음악가의 은유라는 형식을 빌린 추상 언어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고백해왔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삶의 대명제가 아닌 어딘지 친숙하게 연상되는 단어를 사용하여 전시를 연다. 한옥미 개인전 《미미, 토토, 해피》는 자신이 키워온 반려견 미미(2000~2013), 토토(2007~2020), 해피(2016~)에 대한 이야기이다. 십 수년간 작곡한 음악들에서 그는 자신과 함께한 개들에 대한 기억을 담아왔다. 이번 전시의 주된 설치에서, 그는 물질화된 숫자와 빛이라는 비물질을 통해 그 기억을 기념한다. 

은유적 표현과 추상적 언어로 감추어온 ‘마음의 집’이 있다. 

하우스 넘버로 표출된 숫자의 기억은 한 명(命)의 생명체, 그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기록이다. 

―작가노트

전시장에 들어서면 관객은 숫자를 읽으며 걷게 된다. 이 숫자는 작가가 미미와 토토를 만났고, 함께했고, 헤어졌던 일생의 시간을 뜻한다. 작가는 이 숫자가 누군가의 집을 방문할 때 만나는 문패처럼 읽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그의 예전 연주회에서 간혹 무대를 가로지르는 긴 악보가 등장하면 연주자는 걸으며 연주를 해야 했다. 그런데 요즘미술 전시장에서, 관객의 걸음을 통해 숫자들이 스쳐 가도록 하는 연출은 그 연주의 퍼포먼스를 닮아있다. 이번 전시의 설치는 그렇게 걷다 멈추고 다시 걷는 행위, ‘산책’에 큰 의미를 두는 것처럼 보인다. 미미와 토토와 함께했던 유모차가 등장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이것은 삶의 반려자인 개들과 함께했던 작곡가의 산책을 몽환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수면 속의 꿈과 일상의 환상은 작곡가의 삶으로부터 온 기억의 단편들―한 줄 일기이다. 

사소한 습관, 미소, 그리고 모든 여정 끝의 이별 인사…… 주인? 엄마? 친구? 그 누구였어도 상관없는 나는, 알고 싶다 너희들의 마음을. 내가 걷는 어느 길에나 너희들이 있다.

―작가노트

그의 음악들을 요즘미술 전시장에서 다시 들어보자. 너무나 많은 혹은 친절한 창작의 단서들이 나열된 전시장에서 그의 영상-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가 개들과 함께 산책하며 맡았을 냄새, 소리, 풍경 등을 소리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추상적 언어로 이해되었던 그의 음악은 매우 향기 나고, 무섭고, 서글프고, 사랑하는 섬세한 감정들로 다시 들릴 것이다. 요즘미술과의 인터뷰에서 작곡가는 이렇게 말했다. “결국은 내가 그들의 생각 전부를 알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럴 거라고 추측하는 것들은 상상일 뿐일 수도 있죠.” 전시 《미미, 토토, 해피》는 “너도 들었니?”, “너도 느꼈니?” 하며 한 존재(인간)가 또 다른 존재(개)에게 말을 거는, 인간 한옥미의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글: 박용석

전시전경

한옥미(작곡가)

서울대 음대 작곡과 졸업 후, 프랑스 파리국립고등음악원(C.N.S.M.P.) 작곡과(사사: Gerard Grisey)와  파리사범음악원 작곡과 최고과정을 졸업했으며, EHESS-IRCAM 현대음악 이론 과정에 수학했고, 다수의 국제 작곡 콩쿠르(Gaudeamuce/ Valentino Bucchi/ MC2-BASS)에 입상했다.

귀국 후 ‘다르게 듣기 music in gallery'(2002 문예진흥원 다원예술부문 후원)를 시작으로, 문화일보갤러리초대전(2003/2004), TENRI cultural Institute gallery(2012, New York) 해외전시까지 개인전 ‘Music Exhibition’을 통하여 2025년 현재까지 작곡, 드로잉, 영상, 설치작업 등으로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6년부터 시작된 ‘이해하기 쉽고 듣기 편한 동시대 음악’을 지향하는 ‘Music Poem’ 시리즈 공연들은 2011년부터 작곡가가 직접 텍스트를 쓰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Storytelling Music’ 형태로 진화되었으며, 2014년에는 실험음악 작업-Performing Art, Music for Stage Setting, Clapping Sound, Abstract Mash Up, Hybrid Music 등-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한 바 있다. 또한 어린이 음악극(2013-2014) 공연과 단편 영화음악(2015) 작업, 재즈/국악 연주가들과 협업(2014-2018) 등 활동의 폭을 넓혀가며, 2016년부터 현재까지 멀티미디어 무대공연에서 작곡가 자신의 Media Art(audio-visual work) 작품으로 다중감각적 음악영상언어 계발에 주력하고 있다.

2004년 제23회 대한민국작곡상을 수상했고, 가톨릭대학교 음악과 작곡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차공간이 협소하므로 차량을 이용하시는 관객께서는 도보 5분 거리의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 주차장(종로구 혜화동 1-21, 10분당 800원) 또는 와룡공영주차장(서울 종로구 명륜길 26, 5분 250원) 이용을 부탁드립니다.

서보경 개인전: 비상시 조각을 깨시오

요즘미술 기획

서보경 개인전: 비상시 조각을 깨시오

Suh Bo Kyung Solo Exhibition: In Emergency Break Art Piec

2025년 5월 24일(토) ~ 6월 10일(화)
13:00 ~ 19:00 (휴관일 없음)

Breaking Bread: 2025년 6월 10일 화요일 오후 5시(90분)

전시의 마지막 날 조각의 일부를 함께 나누는 자리를 가집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아래에 성함과 연락처를 남겨주세요.(선착순 20명) 
행사 중 얼굴을 포함한 일부 장면은 기록 목적으로 촬영됩니다.

참가신청은 마감되었습니다.

《비상시 조각을 깨시오》는 미술이 위기 상황에 개입할 수 있는 물질적, 조형적 가능성을 탐색한다. 과거, 식량을 저장하는 일은 생존의 필수 조건이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문화 속에서 음식은 점차 이미지로 소비되고, 사회적 경험으로 유통되는 기호가 되었다. 이번 전시는 음식에 대한 감각과 인식을 재구성하고, 그것이 생존 수단에서 사회적 상징으로 전환된 과정을 조각 시리즈를 통해 풀어낸다. 이 조각들은 언제든 먹어 치워질 수도 있고, 부패하거나 존치될 수도 있는 상태를 동시에 지닌다. 이러한 불안정한 물질성은 다가오지 않은 위기에 대비하는 잠재적 생존 장치로서의 조각을 제안한다. 소비로부터 유예된 이 사물들은 전시장 안에서 고요히 대기하며, 어느 날 삶의 긴박한 요구에 반응해 작동하기를 기다린다.

<비상 조각: 비축된 조각>
이 조각들은 식재료를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숙성하고 건조한 뒤 밀랍으로 밀봉되었다. 각각의 조각은 대량 생산 체계가 요구하는 기호에 맞게 변형된 동물의 파편화된 형태를 띠고 있으며, 제작 과정은 미라를 만드는 기술과 유사한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고대 피라미드 속 미라가 생명에 대한 신성한 경외를 상징했다면 이 현대의 유물은 생명 인식의 모호한 순간을 유예시키며 소비의 욕구를 일시적으로 지연한다.

<비상 조각: 고지방 오브제>
과거 인류에게 동물성 지방은 생존과 치유의 필수적인 자원이었고 극한의 환경에서는 생명 그 자체였다. 칼로리 과잉 시대에 음식에서 밀려난 ‘지방’은 사회가 무엇을 배제하고 무엇에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드러내며 가치 기준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구성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고지방 오브제’는 관객의 피부로 조금씩 흡수되는 과정에서 감각의 전환이 구현된다. 이 과정에서 작품과 관객의 몸은 물리적으로 연결되고 일종의 보호막을 형성하며 저항 없는 수용을 가능케 한다.

<비상 조각: 완벽한 한 쌍>
이 시계는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Untitled (Perfect Lovers)”에 대한 오마주로 ‘같음’과 ‘다름’, 그리고 시간 속에서 드러나는 불일치에 대해 말한다. 두 쌍의 시계는 동일한 레시피와 조건 아래 제작되었지만, 종균의 반응과 밀가루의 성질에 따라 미세한 차이를 품는다. 사용된 밀가루는 외형상 같은 재료지만, 한 쌍은 한국산 통밀가루와 중국산 통밀가루로, 다른 한 쌍은 한국산 백밀가루와 일본산 백밀가루로 제작되었다. 중국과 일본은 한국과 지정학적으로 인접하지만, 오랜 역사적 충돌과 긴장을 축적해 온 관계이다. ‘밀가루’라는 동일한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같음’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쉽게 구축되고, 또 원산지에 따라 얼마나 빠르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준다.

<비상 조각: 설명서>

<냉장고는 조각을 이해하지 못한다>
참여자 세 명은 자신에게 특별히 소중한 음식과 요리법에 관해 이야기한다. 작가는 각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를 오래 보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가공하여 밀랍으로 봉인한다. 이 오브제는 오랜 시간 저장 가능한 조각이 되어 각자의 냉장고 속으로 되돌아간다. 냉장고는 생존과 소비를 위해 작동하는 장치지만, 이 조각은 그 안에서 먹히지도, 부패하지도 않은 채 미각 이전의 상태로 머문다. 이 작업은 음식에 대한 개인의 기억과 정서가 타인의 손을 거쳐 물질로 변환되고, 새로이 형성된 형태가 다시 삶의 내부로 자리 잡는 과정을 보여준다.

Canvas’ Cabinet

전시명: Canvas’ Cabinet

기획, 참여작가, 디자인, 설치: 김륜아, 이경주, 이예지, 정주원, 진예리 

전시기간: 2025. 5. 4.(일)~5. 20.(화) 오후 1-7시(휴관일 없음)

오프닝행사: 2025. 5. 4. 오후 5시

Curation, Artists, Design, Installation: Luna Kim, Kion Rhie, Yeji Lee, Juwon Jeong, Yeri Jin.

Preface: Yeri Jin

Dates: 2025.5.4~5.20, 1~7pm(No days off)

Venue: 3F, 7, Hyehwa-ro 9 gil, Jongno-gu, Seoul. Art these days

《Canvas’ Cabinet》 작가와의 대화
일시: 2025. 5. 11.(일) 오후 2시
장소: 요즘미술(서울시 종로구 혜화로 9길 7, 3층)
참여작가: 김륜아, 이경주,정주원, 진예리
신청: 선착순 13명

전시전경

Canvas’ Cabinet

진예리

Canvas’ Cabinet은 회화라는 완결된 이미지를 위해 과정적으로 탈락되고, 소외되고, 버려진 수많은 사건들을 복기하여 재구성하는 전시이다. 이를 위해 다섯 작가는 캔버스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다룬다. 김륜아, 이경주, 이예지, 정주원, 진예리는 각자 서랍 속과 머릿속을 뒤적이며 작품의 시작점을 돌이켜 본다. 이들은 완성된 회화 이미지 속에, 아무도 모르게 봉인된 시작점, 작업의 단초가 되던 흩어진 메모들, 과정으로부터 촉발된 우연한 시도의 흔적들을 그러모아 지나간 작업의 과정을 톺아보며 완성이라는 평탄화 과정과 함께 끊어내던 울퉁불퉁한 시간과 공간의 경험을 소환해낸다. 다섯 작가는 그림을 위해 재료들과 맺었던 촉각적 접촉, 압축된 이미지가 되기 이전의 만연체의 말들을 물질적 차원으로 제시하거나, 프레임 밖으로 밀려나 잘려나간 과거의 장면들을 현재라는 감각 안으로 소급하여 형태를 통해 건네는 말 없는 질문들로 이어진다. 이러한 과정은 회화가 그저 입이 없을 뿐, 말이 없는 매체가 아님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의 제목인 캔버스의 캐비닛(canvas’ cabinet)은 자기지시적이면서도 자기복제적이진 않은 함의를 내포한다.

김륜아 전시전경

김륜아는 그리던 대상을 과감히 뒤덮고 재탄생시키는 과정을 반복하며 회화를 완성해나간다. 이때 뒤덮이는 그림은 표면에 덧대어 그려질 대상의 생장을 위한 양분처럼 작동한다.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조각 작업은, 완성된 화면 아래 묻혀있는 대상들을 화면 밖으로 되살려낸 것들이다. 도자조각들은 회화작업에 과정적 모티브로써 개입하고 기여하는데, 이는 그림의 완성을 돕는 것과 동시에 그림의 제물이 된다. 마치 누군가의 무덤 속 유물을 발굴하여 그의 정체를 유추하며 보이지 않는 과거를 반추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김륜아의 조각들은 완성된 표면 아래 매장된 이미지들 현재의 시공간으로 소생시켜 다시금 생명력을 부여한다. 김륜아는 자신과 회화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실과 충돌을 외면하거나 은폐하는 것이 아닌, 어쩌면 사장된 이미지들의 존재를 기억하기 위해 ‘상실 후 애도(grief or mourning)’처럼 존중과 위로를 동시에 표하는 것과 같다. 나아가 자연 건조한 점토 조각들은 전시 중에 관객에게 무료로 나누어진다. 이는 일종의 ‘의례적 장송(葬送)’으로, 작가는 그림에서 밀려나고 지워진 대상들을 완성된 그림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 존재로 ‘남기는’ 것이 아닌 ‘떠나보내는’ 것으로 결정한다. 그렇게 관객에게 건네지는 조각들은, 마치 소각된 유골에서 남은 뼛가루처럼 무게는 가볍지만 존재로는 무거운 잔여물이다. 김륜아는 그것들을 조용히 흩뿌리듯 건넨다. 결국 더는 주인의 것이 아닌, 기억의 유예로 남은 무형의 증거들은 관객의 손으로 전달된다.

이예지 전시전경

이예지의 그림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개들은 길들여진 개라기보다는 들개에 가까운 야생의 느낌을 준다. 가늘고 긴 몸체와 날렵한 듯 단단한 이 개들은, 길 위를 여기 저기 떠돌며 거친 땅 위에 발을 붙이고 서있다. 꼿꼿함과 유연함, 뻣뻣함과 부드러움 사이를 흐르듯 오가는 형상은 개에게서 느낄 수 있는 친밀감과 낯섦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일련의 사건을 경험한 뒤 개를 매개하여 사라진 망자를 불현 듯 떠올리게 되었는데, 이는 단순히 사후세계, 이승과 저승 같은 종교나 신화적 관점에 기댄 상상은 아니었다. 이예지는 망자의 삶을 상상할 때 어렴풋이 스치는 주마등같은 것을 들개를 통해 매개한다. 그 결과 작품 속 개는 마치 경험해 본 적 없는 노인의 시간을 마주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남는 건 그저, 살아온 궤적을 더듬듯 그려보는 일뿐이다. 즉, 들개라는 형상으로 거칠게 요약되고 압축되었지만, 이는 이름 모를 감응된 기억이 망자를 소환하는 것이 아닌 망자의 전신(前身)이 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고 끝나버린 삶의 궤적을 마주하게 되는 낯선 방식의 기억이다. 나아가 작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가버린 시간의 궤적이 남긴, 희미하지만 깊은 잔상을 다른 대상에서도 발견한다. <The Fish Plate>, <In Plain Sight>, <Cremare Speaks>는 기억하고 있으나 기록하지 못한 시간의 잔상을 붙잡아 그려낸 형상이다. 이들은 감각과 기억, 시간과 존재에 대한 사유의 여운으로 나아간다. 소멸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감각되는 것들에 대한 이예지의 회화는 그렇게, 존재의 부재를 응시하고, 그 여운을 현재의 감각으로 호출한다.

정주원 전시전경

정주원의 그림 속 대상들은 정확한 말로 수렴될 수 없는 감각들로 언어와 이미지 사이에서 꿈틀거리며 발화 이전의 상태에 머문다. 이는 마치 발아하는 씨앗처럼, 무엇이 될지는 이미 정해져있지만, 어떻게 자라날지는 모르는 존재들이다. 여러 상태로 뻗어나가는 선들이 모여 자라나는 형상들은 발랄한 회오리, 주춤하다 지지직 그은 선, 무겁고 고집스러운 막대 같은 것들이 되어 한 화면 안에서, 서로를 밀고 건드리며 계속해서 움직인다. 갑자기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몸이 슬쩍 밀리는 기분처럼, 말로는 전할 수 없는 장난스런 관심처럼, 선과 형태들은 상황과 태도를 담는 의태형(形) 혹은 의성형(形)이 된다. 작가는 언어로 환원되지 않는 감각의 잔류들을 수집하고, 회화의 해석적 측면에 은근슬쩍 등을 돌리며 관객에게 슬며시 다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밀어 넣기를 시도한다. 소통에서 발생하는 엉뚱함과 기민한 감정선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신의 회화적 발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을 유도하며 이러한 방식은 의미의 전달이 아닌 감각의 건드림(touch)에 가깝다.

이경주 전시전경

이경주는 여러 칸으로 분할된 관을 만들고, 그 안에 작가가 상정한 캐릭터인 ‘좀비 소녀’의 삶의 단면들을 수납한다. 칸마다 담긴 대상들을 보고 있자면, 정갈하게 모아둔 신체의 일부들, 강박 혹은 집착적인 희망처럼 보여 짠한 마음이 드는 네잎클로버, 사물과 풍경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화면들이 포착된다. 칸칸이 쪼개진 형태의 관은 온전한 신체도, 시체도 담을 수 없는 구조이기에, 분절된 상태로 담긴 대상들은 마치 관의 형태를 흉내 낸 서랍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미 죽음과 비루한 갱생을 거치며 ‘나’라는 온전함을 잃은 전적이 있는 좀비소녀에게, 이 서랍은 단순한 수납의 기능에 머물지 않는다. 관은 오히려 은밀하게 수집해온 것들을 저장하는 ‘쉐도우 박스(shadowbox)’같은 것이 되기도 하고 동시에 이런 저런 삶의 흔적들이 들어찬 닫힌 방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관객은 이를 자유롭게 열고 닫으며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관은 단순히 그림을 보호하거나 돋보이게 하는 액자의 기능을 넘어 의미와 상징을 내포하는 ‘서사의 지지체’가 된다. 즉, 각 칸마다 존재하는 서사적 단서들은 작가가 상정한 ‘좀비 소녀’라는 허구적 인물을 구성하기 위한 장치이다. 좀비소녀라는 사후적 캐릭터는 끊임없이 먹어치우지만 계속해서 허기진 상태를 마주하며 신체의 잔해를 모으고 자신의 관 안에 은밀하게 전시한다. 이는 계속되는 욕망과 이로 인해 해부되는 자아의 모순에 대한 유희적이면서도 비판적인 재구성으로, 풀려고 할수록 더욱 엉키고 마는 실 뭉치처럼 입 안에 머물며 소화되지 못한 채 되풀이되는 혼잣말이다.

진예리 전시전경

진예리는 회화적 행위를 보다 자유롭게 확장하기 위해 OHP필름 여러 장을 연결하여 팔레트로 사용한다. 긁어내고 문지르고 흩뿌려지는 행위가 축적된 결과물로서의 팔레트는, 그림에선 결코 볼 수 없는 레이어의 뒷면을 보여준다. 팔레트의 앞면과 뒷면은 완전히 다른 색채와 구성으로, 작가는 평면의 앞면과 뒷면이라는 양면성과 이중성을 자신의 회화로 끌어들인다. 표면이면서 이면인 것, 그림이 아니면서 그림 같은 것을 가시화하기 위해 팔레트의 양면을 오리고 붙이면서 조형적으로 배합하여 조각을 만든다. 그리고 쓰고 버릴 팔레트를 소중한 물건인 냥 모아온 애착과, 오밀조밀한 조각들을 ‘픽시’라는 요정이 인간이 버린 하찮은 물건들을 보물처럼 간직하는 특성으로 연결한다. 작가는 팔레트로 조각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팔레트를 오려서 그림에 붙이거나, 팔레트에 남은 물감들 위로 레진을 부어 투명하게 포를 떠낸다. 나아가 팔레트를 붙이던 풀(Glue)은 드로잉 재료가 되어 캔버스 위에서 반투명한 선이 된다. 6개의 연결된 회화는 ‘~’혹은 ‘?’의 형태를 연상시키는데, 이는 여기저기를 오가듯 평면과 입체 사이를 들락날락 거리며 빛과 동선에 따라 변화하는 공간적 체험을 유도한다. 관객이 적극적으로 공간을 경험할수록 움직이기 시작하는 모빌 조각들은 자연스레 관객의 동선을 제한함과 동시에 작품에 가까이 다가서게 만든다. 그림 속에 숨어있는 팔레트의 흔적들, 그림과 같은 조형적 태도로 제작된 조각들은, 작고 장난기 많은 픽시가 일부러 길을 잃게 만들고, 물건을 숨기는 등, 장난을 치지만 때때로 도움을 주기도 한다. 결국 그림에 숨어든 팔레트들은 관객을 방해 할지, 도움을 줄지 작은 개입을 노리며 기웃거린다.

이처럼 『Canvas’ Cabinet』은 회화라는 결과물에 수렴되지 않은, 혹은 애초에 수렴되기를 거부한 감각과 기억, 행위와 잔여물들을 수집하고 배치하는 다섯 작가의 이야기이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표면 바깥을 호명하는 이들의 작업은 회화가 봉인한 과거들을 다시 끌어내며, 이들은 마감된 회화의 시간 너머로 몸을 기울여 잘려나간 시작점과 빗겨나간 감각들을 다시 불러내 ‘지금’이라는 입을 빌려 되묻는다. 그리고 이렇게 획득한 목소리는 어느새 회화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굳게 닫힌 표면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하나의 ‘캐비닛’이 된다.

1회 요즘미술 마켓

1회 ‘요즘미술 마켓’에 현대미술에 관심있는 개인 소장가와 일반 관객을 초대합니다. 

본 마켓은 일반적인 아트 페어와 달리 볼거리, 먹을거리, 입을거리, 꾸밀거리, 읽을거리, 즐길거리, 생각할거리 등 다양한 요소가 등장합니다. 미술가(26개 팀)들이 직접 부스를 운영하여 작품, 물질, 비물질을 전시, 판매하는 것은 ‘생활’이 ‘예술’이 되는 흥미로운 순간입니다. 대형 아트 페어에서는 볼 수 없는 유쾌한 미술시장을 함께 체험해 보세요.

참여작가

김륜아, 김유진, 김정아, 김정윤, 김정은, 류보미, 맹성규, 박영선, 박용석, 소보람, 신정균, 오인환, 윤소린, 이세린, 이윤수, 이은정, 이정근, 임은빈, 장수미, 정정화, 최민경, 최수진, 황귀영, 낫씽이즈리얼, 지질학적 베이커리, 케이크메신저(이상 26팀)

행사기간: 2025년 04월 05일(토)~06일(일) 13:00~18:00

행사장소: 서울시 종로구 혜화로 9길, 7. 3층

관람무료

전화 문의: 02-6958-5753

art-thesedays.com | 인스타그램 @art_thesedays

주차공간이 협소하므로 차량을 이용하시는 관객께서는 도보 5분 거리의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 주차장(종로구 혜화동 1-21, 10분당 800원) 이용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