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보관용: group show

《읽는미술》

▤ 전시제목: 《읽는 미술》

▤ 참여작가: 구민자, 김소희, 김솔, 김시원, 김연주, 김정은, 레이첼 슈더, 맹성규, 문상훈, 박용석, 오인환, 윤소린, 이윤수, 이미혜, 이정식, 임윤경, 전지인, 정아람, 정지수, 조수민, 조우희, 황귀영, 현세진, k (이상 24인)

▤ 전시기간: 2026. 9. 3.(목)~9. 23.(화) *월요일 휴관

▤ 오프닝: 2026. 9. 3.(목) 오후 5시

▤ 전시장소: 요즘미술일층 (서울시 종로구 혜화로9길 7, 1층)

▤ 전시시간: 오후 1~7시

▤ 기획: 요즘미술 (박용석)

▤ 도움주신 분: 류현미, 이윤수, 주진석, 정아람

▤ 문의: 02-6958-5753


▤ Title: Reading Art

▤ Artists: Gu Minja, Kim Sohee, Sol Kim, Kim Siwon, Yeonjoo Kim, Jungeun Kim, Rachel Schuder, Seonggyu Maeng, Moon Sanghoon, Park Yong-seok, Inhwan Oh, Solin Yoon, Yoonsu Lee, Meehye Lee, Jungsik Lee, Yoonkyung Lim, Juen Jiin, Ahram Jeong, Jisoo Chung, Sumin Cho, Woohee Cho, Guiyoung Hwang, Sejin Hyun, k 

▤ Exhibition: Thursday, September 3 – Tuesday, September 23, 2026 *Closed on Mondays

▤ Opening: Thursday, September 3, 2026, 5 p.m.

▤ Venue: Art these days 1F (1F, 7 Hyehwa-ro 9-gil, Jongno-gu, Seoul)

▤ Hours: 1–7 p.m.

▤ Organized by: Park Yong-seok

동시대미술에서 언어는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만은 아니다. 언어는 종종 작품 그 자체의 구조가 되고, 때로는 이미지가 감당하지 못하는 지시와 논리를 떠맡으며, 어떤 경우엔 이미지보다 먼저 존재해 이미지를 규정하기도 한다. 미술을 ‘본다’는 행위는 흔히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경험으로 이해되지만, 이미지는 언제나 동시에 읽어내야 한다. 현대미술은 더욱더 그렇다.

언어를 가지고 작업한다는 것은 기억과 경험을 소환하고, 관계를 만들고, 과정을 수용하고, 시간 속에서 작동하는 행동을 만드는 일이기에, 수행적인(performative) 미술이 된다. 언어는 발화되거나 쓰이는 순간에 비로소 존재하며,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다. 언어적 구조로 작업한다는 것은 따라서 완결된 이미지를 제시하는 대신, 발화·기록·소환·관계 맺기라는 행위를 작품의 조건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품은 보여지는 대상이 아니라 매번 다시 일어나는 사건에 가까워진다. 《읽는 미술》은 이러한 언어적 태도를 지닌 작가들을 소개한다.

In contemporary art, language is not merely a means of understanding a work. Language often becomes the very structure of the work itself; at times it takes on the reference and logic that images cannot bear; and in some cases it exists prior to the image and determines what that image will be. To “see” art is commonly understood as an immediate, sensory experience, yet an image must always be read at the same time. This is all the more true of contemporary art.

To work with language is to summon memory and experience, to build relations, to admit process, and to produce actions that operate within time — and in this it becomes performative art. Language comes into being only in the moment it is spoken or written; it is itself an event. To work with linguistic structures is therefore not to present a completed image, but to take the acts of speaking, recording, summoning, and relating as the very conditions of the work. The work thus becomes less an object to be looked at than an event that occurs anew each time. Reading Art introduces artists who hold to this linguistic attitude.


주차공간은 도보 5분 거리의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 주차장(종로구 혜화동 1-21, 10분당 800원) 또는 와룡공영주차장(서울 종로구 명륜길 26, 5분당 300원) 또는 명광교회 옆 공영 주차장(서울 종로구 성균관로 45, 1시간 3000원) 이용을 부탁드립니다. 

《반전시도》 

▤ 전시제목: 《반전시도》 

▤ 참여작가: 구지민, 김소희, 밈모, 박정원, 배철, 서해근, 안지원, 오상미, 요요진, 이혜목, 임은빈, 조정현, 주진석, 최지수, 한비롯, 황동하, 비주얼보이스(참여 작가: 김근아, 김나연, 김노랑, 김선경, 김정일, 김지하, 니카미 유리에, 미로, 박성환, 박성현, 백주미, 이진주, 인내, 전혜자, 정영관, 조한결, 최기원, 최지해, 폴짝/기획: 우정아, 김지하, 윤혜진, 조한결)

▤ 전시기간: 2026. 8. 1.(토)~8. 20.(목) 매주 월요일 휴관

▤ 전시장소: 요즘미술+요즘미술일층(서울시 종로구 혜화로9길 7, 1층/3층)

▤ 전시시간: 오후 3~8시

▤ 전시기획: 요즘미술(박용석, 백필균, 황귀영)

▤ 전시서문: 백필균(독립 기획자)

▤ 디자인: 박용석

부대 행사

▤ 한비롯 x 탄트진윈 작가 퍼포먼스: 2026. 8. 1. 오후 3시 30분~40분

▤ Title: Anti-War Attempt 

▤ Artists: Gu Jimin, Kim Sohee, Mimmo, Jeongwon Park, Cheol Bae, SEO Hae Geun, Jiwon An, Rebecca Sangmee Oh, Yoyojin, Lee Hyemok, LIM EUN BIN, Cho Junghyun, Ju Jinsuk, Choi Jisu, Han Bierot, Hwang Dongha, Visual Voices(Artists: Kim Keun A, Nayeon Kim, Kim Norang, Claire Kim, Jungil Kim, Kim Jiha, NIKAMI YURIE, MIRO, Seong-whan Park, Park Sunghyun, Joo-mee Paik, Leepearl, INNÉ, Jeon Hye JA, Neo, Hangyeol Jo, Kiwon Choi, Jihae Choe, Paul jjack/Curating: Woo Jung A, Kim Jiha, Yun Hyejin, Hangyeol Jo)

▤ Dates: 2026. 8. 1.~8. 20. 3~8 PM(Monday off)

▤ Venue: 1F & 3F, 7, Hyehwa-ro 9 gil, Jongno-gu, Seoul. Art these days

▤ Curating: Park Yong-seok, PAIK Philgyun, Guiyoung Hwang

▤ Curatorial statement: PAIK Philgyun(Independent curator)

▤ Design: Park Yong-seok

Accompanying events

▤ Han Bierot x Thant Zin Win’s Performance: 2026. 8. 1. 3:30–3:40 PM

우크라이나 대 러시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략에 이어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침공 소식이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폭력의 서사가 쓰이는 오늘날 예술생태계의 일원들이 모여 각자의 질문과 감각을 옮깁니다. 예술이 지금의 현실에 반응하고 발언하는 전시에 많은 관심과 방문 바랍니다.

We witness the war between Ukraine and Russia, Israel’s invasion of Palestine, and now, day after day, reports of Israeli and U.S. strikes on Iran. This exhibition brings together members of the art community, working in a time when narratives of violence continue to unfold, each translating their own questions and sensibilities into artistic form. We invite you to visit the exhibition and engage with works through which art responds to and speaks to the realities of our time.


2026년 요즘미술에 보내는 글

백필균

모임을 설계하는 전시는 나눔을 실천하는 이유로 모종의 구조를 조직한다. 전시 맥락을 구축하는 각기 다른 요소들은 기술로서 구별되고 기호로서 연계한다. 조직된 구조에서 둘 이상의 개체 또는 군집 단위가 상대에게 자기 몫 일부를 전이하는 상황은 양자를 전제하기에 필연적이다. 또한 전시에서 참여하는 창작자-매개자-감상자는 반드시 무엇을 나눈다. 화자와 청자는 우연한 성공부터 계획된 실패까지 분할과 분배로 각자의 몫을 서로의 것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자처한다.

이는 공개 모집으로 전시에 초대하는 자와 초대되는 자에게도 적용된다. 기획자가 주제와 참여 조건을 설정한 이후 지원자가 그 기준에 얼마나 적합하고 그 기대에 어떻게 적응할지, 또는 역으로 기획자가 동료의 기준과 기대에 일정 수준 이상으로 부합하거나 부응할지 서로 모른다. 공모의 절차는 미지수를 전제한다.

요즘미술은 2026년 4월 “반전 시도(anti-war attempt)”라는 이름으로 참여자를 공개 모집한 이후 같은 해 8월 동명의 프로젝트 전시를 연다. “거대한 비극 앞에서 무언가라도 해보겠다는 필요성을 느끼는” 고백에 이어 사람들이 응답한다. 공모(公募)는 공모(共謀)로 이어진다. 참여자(팀) 열일곱은 그렇게 모인다. 그들의 자리에 증언하는 몫이 흐른다. 

거의 모두가 전쟁의 반대편에 표류하는 불안을 응시하고(구지민, 밈모, 요요진, 황동하), 허구와 데이터가 교차하는 이미지 체계 속에서 현실의 흔적을 감지한다(배철, 서해근, 조정현). 현실을 은폐하거나 조작하는 미디어를 반문하며(안지원, 임은빈, 주진석),평화가 그 이름 아래 탈락된 자리와 애도하는 미술의 자리를 되짚는다(김소희, 최지수, 오상미). 몫 없는 자의 몫이 스스로 드러나는 순간(박정원, 한비롯), 우리는 비로소 타자를 마주하는 또 다른 관계의 가능성을 발견한다(이혜목, 비주얼 보이스). 

과거를 돌아보는 천사의 날개 너머 역사의 시간이 떠오른다(벤야민). 천사의 등 뒤로 인류가 축적한 파국의 현장이 한없이 펼쳐진다. 그러나 낙원에서 불어오는 거센 폭풍은 천사를 미래로 밀어낸다. 그에게 폐허를 수습할 시간은 허락되지 않는다. 역사는 미처 애도되지 못한 잔해를 떠안은 채 다음 시간으로 떠밀린다.

예술은 죽음을 되돌리지 못하고 잃어버린 몫을 복원하지 못한다. 그러나 폐허를 외면하지 않는다. 잔해 속에서 이름 없는 존재를 발견하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지워진 존재를 응시하며, 보이지 않던 관계를 드러내는 일. 예술은 역사를 감각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민족 또는 국가 단위의 군사적 충돌뿐만 아니라 타자의 삶을 소모시키는 사회적 구조, 인간을 침묵하게 만드는 제도와 권력, 혐오와 차별, 상실과 배제, 그리고 서로를 단절시키는 폭력이 이곳에서 폭로된다. 

폭풍은 지금도 우리를 미래로 밀어간다. 우리는 그 속도를 늦출 수 없다. 그러나 서로의 몫 일부를 기꺼이 나눔으로써 또 다른 폐허를 당연한 역사로 남겨두지 않는다. 전쟁의 기억을 함께 짊어지고, 타자의 상처를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이며, 도래하지 않은 평화를 함께 상상하는 일. 잠정적 공동체인 《반전 시도》는 이토록 무모한 모의 가운데 기꺼이 서로의 세계를 나눈다.


주차공간은 도보 5분 거리의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 주차장(종로구 혜화동 1-21, 10분당 800원) 또는 와룡공영주차장(서울 종로구 명륜길 26, 5분당 300원) 또는 명광교회 옆 공영 주차장(서울 종로구 성균관로 45, 1시간 3000원) 이용을 부탁드립니다. 

《on file》

《on file》  

📂 전시 기간: 2026. 7. 6.(월)~7. 26.(일)

* 화~일 오후 3시~8시

* 전시 오픈일 7월 6일(월)에는 정상 운영합니다.

📂 전시 장소: 요즘미술 (서울시 종로구 혜화로9길7, 3층)

📂 참여 작가: 백승환, 조수민

📂 기획: 박하은

📂 사진 촬영: 백승환

타일의 연쇄로 이루어진 균질한 바닥이 하나의 게임판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반복되는 칸들을 이어 임의의 경로를 설정해보거나, 줄눈을 피해 칸과 칸 사이를 건너뛰어보자. 의도치 않게 줄눈을 밟는다고 해도 특별한 불이익이 따르지는 않을 테니, 태연히 다음 칸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그만이다. 외부적으로 강요되지 않은 자의적인 규칙을 수행하며 몸은 의도와 우연한 실수 사이를 오가고, 예측과 대응을 전략 삼아 자신의 위치를 조정한다. 여기서 타일의 배열 자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중요하다. 결국 변하는 것은 주어진 타일을 통과하는 방식이다. 규제하는 동시에 생성하는 그리드(grid)로서 타일을 정의할 때, 평소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구조가 표면에 떠오를 것이다.

타일을 그리드로 바라보게 되는 전환의 감각을 보다 넓은 일상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 보자. 우리는 일상 역시 수많은 조건으로 구획된 구체적인 시공간임을 눈여겨보게 될 것이다. 공간을 나누는 경계, 시간을 반복적으로 구획하는 단위, 행위를 제한하는 규약 등 익숙한 나머지 좀처럼 의식되지 않는 조건을 전경으로 불러오기 위해 급진적인 전복까지 도모할 필요는 없다. 이미 작동하고 있는 질서를 새삼스레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규칙 하나면 충분하다. 백승환과 조수민이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규칙은 이러한 맥락에서 논의될 수 있다. 일상, 미술, 혹은 불가분하게 달라붙은 일상-미술을 규정하는 조건을 가시화하기 위한 규칙으로서 말이다.

조수민의 작업을 통해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내는 조건은 시간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조수민은 시간을 표준화하고 수치화하는 시스템에 주목한다. 예컨대, 〈On-Time Drawing / Waiting〉(2023-)은 디지털 시계의 뒷자리가 “00”을 표시하는 정각을 기준점 삼아 하루를 24번의 1시간으로 분절한다. 정각을 조금도 틀림없는 바로 그 시각이게끔 하고, 숫자와 알림으로써 표지하는 것은 추상화의 근대적 시간 체계의 산물이다. 자연에 없는 정각을 만들어 내는 시간 그리드로서 이 체계는 일상 전면에 침투하여 흐르는 시간을 구획한다. 하루를 59초와, 그 59초를 기다리는 59분 1초의 연속으로 경험하는 규칙을 세우며, 조수민은 인위적 시간이 지닌 조직과 구속의 힘을 가시화한다.

한편, 〈Office Depot (365)〉(2026)와 〈The Sky Shift〉(2024-)에서 시간 체계를 부단히 의식하려는 조수민의 시도는 한 시간, 하루의 반복으로 구축된 일 년이라는 상위 단위를 겨냥한다. 두 작업은 반복되는 하루, 그리고 매년 되돌아오는 365일을 (윤년이라면 366일) 비어 있는 칸으로 상정한 뒤, 이를 메우는 상반된 방식을 제안한다. 〈Office Depot (365)〉에서 그 칸을 차지하는 것은 조수민이 조교로 일하고 있는 학과 사무실 컴퓨터에 저장된 디지털 파일이다. 작성자를 추적하기 어려운 익명의 이미지이자, 제도로서 학과가 생산한 업무 기록은 생성 일자에 따라 선별되어 일 년의 달력을 구성한다. 그러나 20여 년을 가로지르는 데이터베이스로도 이 달력은 완전히 마감되지 않는다. 매년 법정 공휴일에는 학과가 운영되지 않고, 그렇다면 조수민이 수집할 파일 역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비어 있음은 학과 제도 바깥에서 발생한 예외가 아니라, 그 작동 방식에 내재한 휴지기에 연유한다. 〈Office Depot (365)〉는 빈칸을 남겨둠으로써 제도가 멈추는 순간마저 그 제도를 가동하는 조건임을 노출한다.

이와 반대로 〈The Sky Shift〉는 보다 개인적인 리듬을 지닌다. 매일 여섯 번에 걸쳐 촬영한 하늘을 타임카드의 칸 위에 딱 들어맞게 붙여가며, 조수민은 추상적인 일자가 아닌 빛과 어둠, 날씨를 압축한 물질적 표면으로서 하루를 제시한다. 구체적인 일상, 실질적인 세계의 변화와 동기화되며 균질한 시간의 격자는 저마다 다른 밀도를 간직하게 된다. 이렇게 두 작업은 서로의 반대편에 자리한다. 하나는 디지털 시스템과 제도의 시간을 기록하고, 다른 하나는 몸으로 감각한 하루를 쌓아 올리며 주어진 365일의 격자 위를 다른 보폭으로 걷는다.

여기서, 출발선과 결승선이 같은 위치에 놓인 반복의 구조를 따라 달리는 퍼포먼스를 기록한 〈Track Drawing (29′25″)〉(2024)은 오로지 시간 그리드에 초점을 맞추는 듯하였던 조수민의 작업을 다시 읽게 만든다. 마주 보고 있는 두 대의 모니터는 각기 트랙의 맞은편을 비추며, 프레임 밖으로 달려 나갔다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 제자리로 달려 들어오는 조수민을 보여준다. 체력이 소진되어감에 따라 그가 프레임에 등장하는 간격은 점차 넓어지며, 29분 25초가 지난 후 달리기는 완전히 멈춘다. 여기서 시간은 독립적인 조건이라기보다 트랙의 길이와 몸의 운동량에 의해 역산되는 값에 해당한다. 몸과 공간, 호흡과 피로가 서로를 규정하는 관계를 몸의 이동으로 번역하며, 조수민은 여러 조건이 불가분하게 얽힌 복잡한 일상의 그리드를 파악한다.

조수민에게 일상-미술을 매개하는 삶의 조건을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다면, 백승환에게 사진은 작업의 매체이자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서 그 무엇보다 각별하다. 여러 갈래로 분기하는 사진의 조건을 확인하고, 그 조건들이 도출하는 사진의 가능성을 하나씩 검토하는 일은 백승환의 작업을 견인하는 동력이다. 그러나 투명한 지표와 반투명한 이미지 사이에서,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서, 기록과 예측 사이에서 증식하는 사진의 그리드를 온전히 밟아나가기란 불가능할지 모른다. 이제는 알 듯하다고 생각했을 때 곧장 손아귀를 벗어나 버리는 사진의 유동성까지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생성되는 사진의 조건들을 기꺼이 검증하고자 하는 태도는 백승환의 힘이다. 백승환의 관심은 한 장의 사진만큼이나, 그 사진이 생산되고 수용되는 과정을 탐구하는 지점에 있다. 카메라는 언제 세상을 기록하는가, 프레임은 무엇을 잘라내고 무엇을 걷어내는가, 사진은 말없이 거기-그때를 지시할 수 있는가, 아니면 언제나 의미화의 문턱에 서 있는가. 이러한 질문을 단일한 답변으로 정박시키기보다, 백승환은 매번 각기 다른 규칙을 지침 삼아 흔들리는 사진의 조건을 되묻는다.

Hovering (2022) 시리즈는 왜곡도, 사심의 개입도 없이 현실을 그대로 포착하는 것이 사진의 본질이 될 수 있다면, 이를 위해서는 카메라 뒤에 자리한 촬영자의 존재가 희석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 시작하는 듯하다. 지하철 출입문이 열리고 닫히는 때에 맞춰 그 문의 너머를 촬영하고, 김이 서린 거울 앞에서 20일간 매일 셔터를 누르는 규칙을 세움으로써 백승환은 뷰파인더에 들어오는 장면에 대한 선택을 최대한 유예한다. 지하철 출입문과 셔터의 움직임이 비유적으로 연동되고, 비슷한 구도로 촬영된 20일간의 거울 기록이 행렬을 맞출 때 사진으로부터 의미를 선취하려는 충동은 조금씩 휘발된다. 규칙과 그에 기반한 반복으로써 저자성을 카메라에 양도하는 상황을 가정하며, 백승환은 현실을 무사심하게 분절할 수 있다고 믿어지는 사진의 작동 방식을 확인해 본다.

한때 아르바이트를 하던 빵집의 한 단면을 발목 정도 높이에 설치된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로우 파일로 삼는 〈Making New Sequence〉(2021)는 기기의 위치를 잡는 초기 단계 이후로는 더 이상 촬영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Hovering 시리즈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진가의 의지와 사진을 분리해 낸다. 그러나 이 작업은 극적인 자동화와 객관화를 넘어, 사진의 또 다른 조건을 가늠한다는 점에서 조명될 필요가 있다. 사진은 직사각형의 프레임으로써 움직이는 세계를 멈춰 세우지만, 역으로 세계는 무한히 확장되는 시공간을 암시하며 사진을 프레임 바깥으로 접속시킨다. 로우 파일로부터 발걸음만을 추출해 필름에 고정하고, 라이트박스 위에서 필름들을 겹쳐 보는 백승환의 작업은 사진이 함축하는 시간성을 재고하게 한다. 정지된 프레임은 서로를 통과하며 미세한 움직임을 품기 시작하고, 겹친 필름 위에서 발걸음들은 서로를 스쳐나간다. 1초에 24장의 사진을 재빠르게 줄 세우며 운동의 환영을 유도하는 영화가 되지 않으면서도, 천천히 필름 위로 또 다른 필름을 올려보는 백승환의 시도는 하나의 새로운 시퀀스를 이룬다. 단일한 프레임 속에 멈추어 있던 현실의 시간은 프레임과 프레임이 접촉할 때 아주 잠시, 그러나 분명히 흐른다.

사진의 생산 과정뿐 아니라 그것이 수용되는 방식은 백승환의 시선을 끈다. 〈삼십육까지 세어보기〉(2023)에서 사진과 (컨)텍스트의 관계를 엮어내며 그는 얇은 사진의 표면에 의미의 두께를 더하는 맥락들을 불러온다. 이때 백승환은 필름 한 롤에 들어 있는 컷의 수, 서른여섯이라는 물리적 조건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일상 가운데 하나부터 서른여섯까지의 숫자 하나하나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촬영되며, 그 장면에 대한 짧은 글이 사진의 현상에 앞서 작성된다. 이미 완결되어 버린 텍스트는 이후 정착될 사진을 정확히 예고하지도, 충실히 설명하지도 않는다.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 길을 걷던 중 문득 떠올린 생각, 캠퍼스를 배회하는 들개와 마주치고 싶었던 바람과 같은 작은 단상들은 프레임과 그저 느슨하게 포개질 뿐이다. 사진은 여전히 현실을 가리키는 지표지만, 언어와 기억을 호출하는 하나의 계기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사진의 생산과 시간성, 의미화의 조건 사이를 오가며, 백승환은 사전에 설정한 느슨한 구도를 따라 매체로서의 사진을 비스듬히 짚어 나간다.

백승환과 조수민이 제안하는 규칙은 완결을 보장하지 않는다. 완벽히 들어맞아야 한다는 강박 대신, 예외와 실패를 솔직히 고백하며 이들은 규칙의 틈 사이로 채워지지 않은 칸, 끝내 수행되지 못한 시간, 예기치 않은 우연을 흘려보낸다. 〈삼십육까지 세어보기〉는 필름 한 롤의 컷 수를 규칙으로 삼지만, 전시장에는 오로지 스물여섯 쌍의 텍스트와 사진이 놓여 있을 뿐이다. 끝내 적절한 장면을 만나지 못한 숫자의 자리는 빈칸 그대로 남아 그 조우의 실패를 고백한다. 정각을 놓쳤을 때, 조수민은 앞선 작업에서 놓쳐 버린 시간을 억지로 만회하지 않는다. 대신, 정확히 일 년 뒤, 같은 날짜와 같은 시간에 맞춰 공공장소에 놓인 시계를 찾아간다. 일 년 전 자신이 ‘정각을 놓친 시간’을 그곳에서 지켜보고 있었을 목격자-시계의 자리에 자신을 다시 위치시켜 보는 것이다. 되돌아온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공공 시계의 위치를 확인하고, 정각 이전에 그곳에 도착할 수 있도록 이동 경로를 계획하며, 조수민은 수행되지 못한 과거의 시간을 새로운 현재 속에서 다시 가동한다. 틀에 가둘 수 없는 과거를 지금으로 소환하는 것은 백승환의 〈잔여들〉(2026)도 마찬가지다. 10여 년 전 사회정치적 맥락을 되짚으며 촬영했던 다큐멘터리 사진은 더 이상 원래의 맥락만으로 환원되지 않고, 그 위로 더해진 시간의 두께에 눌리며 기억으로 전환된다. 규칙과 의도의 틀로는 온전히 포착되지 않는 것들은 과거를 증명하는 기록으로 머무르지 않고, 예기치 않게 현재를 찾아오는 움직이는 잔여가 된다. 사진이 붙잡았던 그때는 지나갔지만, 그 흔적은 잔상처럼 눈앞에 떠오르며 과거를 이미 끝나버린 시간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이처럼 규칙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미완의 상태를 보존하는 장치일 때 의미를 지닌다. 놓친 정각, 비어 있는 자리는 실패를 드러내는 표지가 아니라 다음 시도를 위한 작은 참조점이며, 규칙이 포착하지 못한 잔여는 다음 시도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단서가 된다. 완결된 기록을 보관한다는 의미보다, 아직 효력을 다하지 않는 가능성들을 섣불리 폐기하지 않는 태도를 가리키기 위해 이 전시에 on file 이라는 이름을 붙여본다. 우리를 둘러싼 조건은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고, 규칙은 그 변화를 끝내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조건을 의식하게 하는 규칙을 세우는 일만큼이나, 그 틈으로 빠져나간 것들을 다음 걸음의 참조점으로 남겨두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바닥 위를 걷겠지만, 그 참조점들이 익숙한 경로를 되짚는 발걸음에 작은 마찰을 가하리라 믿어본다. 그때에는 같은 곳을 걷더라도, 더 이상 이전과 같은 걸음으로 통과하지는 못할 것이다. (글. 박하은)


주차공간은 도보 5분 거리의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 주차장(종로구 혜화동 1-21, 10분당 800원) 또는 와룡공영주차장(서울 종로구 명륜길 26, 5분당 300원) 또는 명광교회 옆 공영 주차장(서울 종로구 성균관로 45, 1시간 3000원) 이용을 부탁드립니다. 

《요상한 신호들》 

《요상한 신호들》  

🍎 참여 작가: 송호준, 신정균, 장우주

🦅 전시 기간: 2026. 7. 6.(월)~7. 26.(일)

*월요일 휴관, 전시 오픈일 7월 6일(월)에는 정상 운영합니다

📈 전시 시간: 오후 3시~8시

🍎 전시 장소: 요즘미술일층(서울시 종로구 혜화로9길7, 1층)

🦅 기획: 요즘미술(박용석)

📈  무료관람

신호는 원래 명확해야 한다. 보내는 자와 받는 자가 같은 코드를 공유할 때, 신호는 비로소 의미가 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오가는 신호들은 어딘가 이상하다. 너무 많거나, 너무 빠르거나, 아니면 뜻밖에 조용하다. 분명히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데,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사회의 신호 체계 속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교감의 안정보다는 조급함이나 불안함을 느끼거나, 해독이 어긋나 외면하기 일쑤다.

투명 방음벽에 충돌하여 죽어가는 새들을 구하는 ‘버드 세이버’를 칭하면 흔히 맹금류 모양의 스티커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 새 모양의 부착 지점 주변에는 여전히 충돌한 새가 발견된다. 이 전시는 그처럼 불완전한 신호의 조짐들을 주목한다.

세 작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미디어 신호를 재료 삼아 한국 사회의 불안한 이면을 포착한다. 이들이 다루는 신호는 전파이고, 화면이고, 데이터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매일 감각하면서도 쉽게 언어화하지 못하는 어떤 기분이기도 하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 정상처럼 보이지만 정상이 아닌 것 같다는 감각. 그 감각은 뚜렷한 형태 없이 공기처럼 떠돌다가, 작품 안에서 비로소 윤곽을 얻는다. ‘웃프다'(웃기고 슬프다)는 말이 이 세 작가가 공유하는 신호의 결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 같다.

“요상하다”는 말은 단순히 이상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정확히 뭐라 말할 수 없지만 분명히 뭔가 어긋나 있다는 감각을 가리키는 말이다. 오작동하는 신호, 잡음과 뒤섞인 신호, 아무도 보내지 않은 것 같은데 어딘가에서 계속 수신되는 신호. 작가들은 이 요상함을 교정하거나 해석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그대로 들여다보고, 증폭시키고, 전시장 안으로 옮겨놓는다.

관객은 수신자가 된다. 그러나 이 전시에서 수신은 이해를 보장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과 가장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매일 무수한 신호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신호들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끝내 확신하지 못한 채로 하루를 보낸다. 《요상한 신호들》은 그 불확실한 수신의 경험을 펼쳐 놓는다.

글: 박용석

Signals, in principle, should be clear. A signal becomes meaningful only when sender and receiver share the same code. And yet the signals circulating through the society we live in now feel somehow off. Too many, too fast, or unexpectedly silent. They are clearly saying something, but what exactly, we cannot be sure. The deeper one moves into society’s signal system, the less one feels the stability of communion and the more one feels impatience or unease—decoding gone askew, met more often than not with a turned-away gaze.

When people speak of “bird savers”—devices meant to keep birds from dying in collisions with transparent soundproof walls—they usually picture raptor-shaped stickers. And yet birds are still found near these very markers, still colliding. This exhibition takes note of just such signs of imperfect signaling.

The three artists each take media signals as raw material, using their own methods to capture the anxious underside of Korean society. The signals they work with are radio waves, screens, data—but they are also, at once, a certain mood we sense daily yet struggle to put into words. A feeling that something is going wrong. A sense that what looks normal may not be. That sensation drifts like air, without clear form, until it finally takes on contour within the work itself. The Korean expression usspeuda—something like “funny-sad,” at once comic and tragic—seems to best capture the texture of the signal these three artists share.

The word yosanghada does not simply mean “strange.” It points to a sensation of something being distinctly off, even if it cannot be named precisely. A malfunctioning signal. A signal tangled with noise. A signal that seems to come from no one, yet keeps being received from somewhere. The artists make no attempt to correct or interpret this strangeness. Instead, they look straight at it, amplify it, and carry it into the exhibition space.

The viewer becomes a receiver. But in this exhibition, reception guarantees no understanding. Perhaps that, in fact, most closely resembles what it means to live in this era. Every day we live amid countless signals, yet we go through our days never quite certain what those signals truly mean. Strange Signals lays bare that experience of uncertain reception.

Curatorial statement: Park Yong-seok

신정균: <Screen Saver> 2026_창문에 접착 시트_가변 크기

새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맹금류 모양의 스티커는 사실상 효과가 없지만 여러 곳에서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 붙여두면 언젠가 효과가 있겠거니 믿는 표식이며 때로는 불길한 징조와 같이 다가온다. 나는 모니터링 사이트에 올라온 죽은 새들의 이미지를 수집하여 또 다른 버드 세이버를 만들었고 이는 공허한 기표를 충돌의 기록으로 대체하려는 시도이다.

신정균: <Everywhere, Nowhere> 2026_은박에 UV 평판 인쇄_54x40cm

망망대해에 놓인 선원들의 서사시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구원의 노래와 겹쳐진다. 조난당한 이들이 밤바다의 유령선과 환영 속에서 헤매듯, 지금 이 비극을 끝내줄 존재를 기다릴 뿐이다. 주변 광원에 의해 간헐적으로 반사되는 파도는 우리의 시선을 그저 이미지의 표면에 머물게 만든다.

신정균: <Troll/ Round/ Catch> 2024_싱글채널 비디오_3분 25초

이 작업은 일반적으로 물가에 설치되어 있는 구명환 사용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포물선을 그리며 던져야 한다거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발로 고정해야 하는 등의 수칙은 위급한 상황에 놓여 있는 누군가를 구출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러한 텍스트를 360도 회전하는 형태로 제작하였고 돌림노래 형식의 음향을 서라운드로 설치하였다. 이는 위기의 순간을 널리 퍼뜨리기 위한 사이렌의 작동 원리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여섯 대의 프로젝터를 위한 기둥과 설치물은 등대와 그물이 되고, 시차를 두고 이어지는 목소리는 무결한 소년들의 성가처럼 공간에 울려 퍼진다.

장우주: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팔아라> 2025/2026_LED패널_48x320cm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팔아라>(2025/2026)는 ‘호재에 대한 소문이 돌면 주가가 오르니 사고, 뉴스가 보도될 땐 이미 고점이니 팔아야 한다’는 주식 용어에서 출발한다. LED 패널에서 보이는 문구들과 각종 수치들은 소문과 사실 사이를 횡단하면서 예술과 금융, 진실과 거짓 사이의 교묘하게 연결된 작동 방식을 보여준다. 예술 관련 광고는 아래 문의를 통해 신청 가능하며, 이는 전시 기간 동안 실시간으로 송출된다.

광고문의) @advertising_inq

장우주: <PERFECTART ETF 출시에 관한 쇼츠 모음> 2025/2026_C-스탠드에 스마트폰, PLA소재 3D프린트_가변크기

<PERFECTART ETF 출시에 관한 쇼츠 모음>(2025/2026)은 전도유망한 작가들로 구성된 ETF 상품을 포함한 각종 미술 관련 금융상품, 뉴스를 소개하는 숏폼 콘텐츠 영상 작업이다. 작가에 대한 투자 가치는 전시 경력, 작품의 거래량, 수상 내역, 공공기관과 미술관에서의 주목도 및 협업 경력, 동시대 담론과의 밀접성 등으로 수치화 가능한 금융 문법으로 다룬다. 인적자본의 관점에서 평가된 작가는 투자 전략에 따라 각기 다른 금융상품에 편입되며, 예술적 가치와 시장가치는 수익률, 성장성, 변동성 등의 지표를 통해 숏폼에 등장한다.

송호준: <사과> 2010_회로 기판, LED, 철, 알루미늄_120x120x120cm 

사과는 관심을 받을 때 익는다. 누군가 플래시를 터뜨려 사진을 찍으면, 사과는 서서히 초록에서 빨강으로 변하며 기묘한 소리를 낸다. 400개의 빛·소리 모듈은 전원만 연결되어 있을 뿐 독립적으로 동작한다. 무질서와 싱크가 반복된다. 

송호준: <GODLED Electronics> 2016~_LED, 전자 회로_가변크기

GODLED Electronics는 신(神) 모양 LED 전자부품을 양산하기 위한 송호준의 회사다. 아이디어는 2010년에 시작되었고, 첫 프로토타입은 2016년에 나왔다. 현재 라인업은 부처(LG-BUD-6036), 예수(LW-JES-7620), 마리아(LB-MAR-4125), 가네샤(LR-GAN-6036)이다. 2026년 대량생산을 해서 실제 유통망을 통해 판매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다. 


주차공간은 도보 5분 거리의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 주차장(종로구 혜화동 1-21, 10분당 800원) 또는 와룡공영주차장(서울 종로구 명륜길 26, 5분당 300원) 또는 명광교회 옆 공영 주차장(서울 종로구 성균관로 45, 1시간 3000원) 이용을 부탁드립니다. 

요즘미술일층 개관전 《요기전》

《요기전》

요즘미술 기획전 작가를 위한 기금마련전시


참여 작가:

강홍구 권병준 김학량 김혜리 라킷키 류민수 박영선 서해근 송엘리 신정균 오인환 왕경민 이성훈 이영호 이윤수 이인협 이정근 임은빈 정정화 조혜정 채진숙 최수진 황귀영 황호진 (이상 24인)


전시 기간: 2025. 11. 23.(일)~12. 7.(일)
| 오후 1~7시 | 휴관일 없음

전시 오픈: 2025. 11. 23.(일) 오후 5시 

전시 장소: 요즘미술일층 (서울시 종로구 혜화로 9길 7, 1층)

구매 상담: 전화 02-6958-5753 또는 요즘미술일층사무실

비공개 작품설명: 매일 오후 7시 (전화 또는 홈페이지에서 예약 필수)


요기전은 요즘미술에서 전시할 작가(박영선, 신광, 황귀영)의 작업을 보고 후원할 작가를 모집하여 전시회를 열고, 관객은 이를 지지하는 마음을 구매로까지 이어나가, 내년에 전시할 작가들에게 금전적 도움과 응원이 되는 구조를 상상합니다. 이러한 시도가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알 수 없으나, 작가의 친분으로 이뤄지는 미술계가 아닌 작업의 연대라는 가치를 기대하며 새로이 여는 요즘미술의 두 번째 전시장 ‘요즘미술일층’에서 개관기념전으로 열고자 합니다.

2026년 요즘미술 기획전 작가들의 작업소개


주차공간이 협소하므로 차량을 이용하시는 관객께서는 도보 5분 거리의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 주차장(종로구 혜화동 1-21, 10분당 800원) 또는 와룡공영주차장(서울 종로구 명륜길 26, 5분 300원) 이용을 부탁드립니다.

《무지개처럼, 우리는 하나가 아니기에 아름답지 않은가.》

요즘미술 협력

《무지개처럼, 우리는 하나가 아니기에 아름답지 않은가.》

Isn’t it Beautiful, Like a Rainbow, That We Are Not One.

이반미술모임 15주년 기념전

기획: 오인환

장소: 요즘미술(서울시 종로구 혜화로 9길 7, 3층)

전시기간: 2025. 9. 6.(토)~9. 19.(금) 휴관일 없음

전시시간: 오후 2시~8시 

전화: 02-6958-5753 

《무지개처럼, 우리는 하나가 아니기에 아름답지 않은가.》는 참여자들이 일상 속 물건들을 무지개 색으로 배열하고 이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참여형 미술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오인환의 기획 아래, ‘이반 미술 모임(이반미모)’의 회원들이 함께 참여하였다.

게이(이반) 참여자들이 자신의 물건들로 무지개를 재현하는 행위는,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가 겪는 익명성과 함께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예술적 표현이다. 동시에 이 과정은 무지개라는 기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것이기도 하다.

각자가 만든 무지개는 사용한 물건의 종류, 색상, 배열 방식, 상태에 따라 저마다의 개별성과 감각을 드러낸다. 이는 ‘무지개’라는 하나의 상징이 오히려 하나로 수렴될 수 없는 다양성과 차이의 집합체임을 보여준다. 이는 ‘다름’을 통해 생성되는 공동체의 형상을 제시하며, 정체성의 획일화를 거부하고 차이의 공존을 지향하는 것이다.

《무지개처럼, 우리는 하나가 아니기에 아름답지 않은가.》는 무지개를 특정 집단의 정체성을 단순화하거나 획일화하는 상징이 아니라, 통합될 수 없는 퀴어 공동체 내부의 다채로운 목소리와 개별성을 드러낸다. 이는 동질성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 개념을 넘어, 시민 사회 전체의 다원성과 다양성을 사유하도록 유도하는 비판적 시선을 제공하는 것이다.

Isn’t It Beautiful, Like a Rainbow, that We Are Not One. is a participatory art project that invited individuals to select ordinary objects from their everyday lives and reconfigure them into chromatic sequences mirroring the spectrum of the rainbow, with the resulting assemblages documented through photography. Conceived and organized by Inhwan Oh, the project was realized in collaboration with members of Iban Art Gathering (Iban Mimo).

For gay (iban) participants, the act of reconstructing the rainbow through their own belongings functions at once as an artistic articulation of queer identity—performed under the condition of anonymity that sexual minorities must often negotiate within Korean society—and as a subtle gesture of disclosure. In this way, the project reimagines the rainbow as a signifier, reframing its symbolic resonance through the lived materiality of the everyday.

Each rainbow, shaped by the kinds of objects chosen, their colors, arrangements, and conditions, discloses its own individuality and sensibility. Considered together, these variations demonstrate that the “rainbow” as a symbol is less a unified emblem than an assemblage that resists convergence into fixed meaning. What emerges instead is the figure of a community constituted through difference—one that rejects the homogenization of identity and aspires toward the coexistence of multiplicity.

Thus, Isn’t It Beautiful, Like a Rainbow, that We Are Not One. positions the rainbow not as a simplified or homogenized emblem of collective identity, but as a prism refracting the multiplicity of voices and individualities within a queer community that cannot be reduced to unity. In doing so, it moves beyond a conception of community grounded in sameness, offering instead a critical perspective that prompts reflection on pluralism and diversity across the fabric of civil society.


주차공간이 협소하므로 차량을 이용하시는 관객께서는 도보 5분 거리의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 주차장(종로구 혜화동 1-21, 10분당 800원) 또는 와룡공영주차장(서울 종로구 명륜길 26, 5분 300원) 이용을 부탁드립니다.

Canvas’ Cabinet

전시명: Canvas’ Cabinet

기획, 참여작가, 디자인, 설치: 김륜아, 이경주, 이예지, 정주원, 진예리 

전시기간: 2025. 5. 4.(일)~5. 20.(화) 오후 1-7시(휴관일 없음)

오프닝행사: 2025. 5. 4. 오후 5시

Curation, Artists, Design, Installation: Luna Kim, Kion Rhie, Yeji Lee, Juwon Jeong, Yeri Jin.

Preface: Yeri Jin

Dates: 2025.5.4~5.20, 1~7pm(No days off)

Venue: 3F, 7, Hyehwa-ro 9 gil, Jongno-gu, Seoul. Art these days

《Canvas’ Cabinet》 작가와의 대화
일시: 2025. 5. 11.(일) 오후 2시
장소: 요즘미술(서울시 종로구 혜화로 9길 7, 3층)
참여작가: 김륜아, 이경주,정주원, 진예리
신청: 선착순 13명

전시전경

Canvas’ Cabinet

진예리

Canvas’ Cabinet은 회화라는 완결된 이미지를 위해 과정적으로 탈락되고, 소외되고, 버려진 수많은 사건들을 복기하여 재구성하는 전시이다. 이를 위해 다섯 작가는 캔버스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다룬다. 김륜아, 이경주, 이예지, 정주원, 진예리는 각자 서랍 속과 머릿속을 뒤적이며 작품의 시작점을 돌이켜 본다. 이들은 완성된 회화 이미지 속에, 아무도 모르게 봉인된 시작점, 작업의 단초가 되던 흩어진 메모들, 과정으로부터 촉발된 우연한 시도의 흔적들을 그러모아 지나간 작업의 과정을 톺아보며 완성이라는 평탄화 과정과 함께 끊어내던 울퉁불퉁한 시간과 공간의 경험을 소환해낸다. 다섯 작가는 그림을 위해 재료들과 맺었던 촉각적 접촉, 압축된 이미지가 되기 이전의 만연체의 말들을 물질적 차원으로 제시하거나, 프레임 밖으로 밀려나 잘려나간 과거의 장면들을 현재라는 감각 안으로 소급하여 형태를 통해 건네는 말 없는 질문들로 이어진다. 이러한 과정은 회화가 그저 입이 없을 뿐, 말이 없는 매체가 아님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의 제목인 캔버스의 캐비닛(canvas’ cabinet)은 자기지시적이면서도 자기복제적이진 않은 함의를 내포한다.

김륜아 전시전경

김륜아는 그리던 대상을 과감히 뒤덮고 재탄생시키는 과정을 반복하며 회화를 완성해나간다. 이때 뒤덮이는 그림은 표면에 덧대어 그려질 대상의 생장을 위한 양분처럼 작동한다.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조각 작업은, 완성된 화면 아래 묻혀있는 대상들을 화면 밖으로 되살려낸 것들이다. 도자조각들은 회화작업에 과정적 모티브로써 개입하고 기여하는데, 이는 그림의 완성을 돕는 것과 동시에 그림의 제물이 된다. 마치 누군가의 무덤 속 유물을 발굴하여 그의 정체를 유추하며 보이지 않는 과거를 반추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김륜아의 조각들은 완성된 표면 아래 매장된 이미지들 현재의 시공간으로 소생시켜 다시금 생명력을 부여한다. 김륜아는 자신과 회화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실과 충돌을 외면하거나 은폐하는 것이 아닌, 어쩌면 사장된 이미지들의 존재를 기억하기 위해 ‘상실 후 애도(grief or mourning)’처럼 존중과 위로를 동시에 표하는 것과 같다. 나아가 자연 건조한 점토 조각들은 전시 중에 관객에게 무료로 나누어진다. 이는 일종의 ‘의례적 장송(葬送)’으로, 작가는 그림에서 밀려나고 지워진 대상들을 완성된 그림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 존재로 ‘남기는’ 것이 아닌 ‘떠나보내는’ 것으로 결정한다. 그렇게 관객에게 건네지는 조각들은, 마치 소각된 유골에서 남은 뼛가루처럼 무게는 가볍지만 존재로는 무거운 잔여물이다. 김륜아는 그것들을 조용히 흩뿌리듯 건넨다. 결국 더는 주인의 것이 아닌, 기억의 유예로 남은 무형의 증거들은 관객의 손으로 전달된다.

이예지 전시전경

이예지의 그림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개들은 길들여진 개라기보다는 들개에 가까운 야생의 느낌을 준다. 가늘고 긴 몸체와 날렵한 듯 단단한 이 개들은, 길 위를 여기 저기 떠돌며 거친 땅 위에 발을 붙이고 서있다. 꼿꼿함과 유연함, 뻣뻣함과 부드러움 사이를 흐르듯 오가는 형상은 개에게서 느낄 수 있는 친밀감과 낯섦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일련의 사건을 경험한 뒤 개를 매개하여 사라진 망자를 불현 듯 떠올리게 되었는데, 이는 단순히 사후세계, 이승과 저승 같은 종교나 신화적 관점에 기댄 상상은 아니었다. 이예지는 망자의 삶을 상상할 때 어렴풋이 스치는 주마등같은 것을 들개를 통해 매개한다. 그 결과 작품 속 개는 마치 경험해 본 적 없는 노인의 시간을 마주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남는 건 그저, 살아온 궤적을 더듬듯 그려보는 일뿐이다. 즉, 들개라는 형상으로 거칠게 요약되고 압축되었지만, 이는 이름 모를 감응된 기억이 망자를 소환하는 것이 아닌 망자의 전신(前身)이 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고 끝나버린 삶의 궤적을 마주하게 되는 낯선 방식의 기억이다. 나아가 작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가버린 시간의 궤적이 남긴, 희미하지만 깊은 잔상을 다른 대상에서도 발견한다. <The Fish Plate>, <In Plain Sight>, <Cremare Speaks>는 기억하고 있으나 기록하지 못한 시간의 잔상을 붙잡아 그려낸 형상이다. 이들은 감각과 기억, 시간과 존재에 대한 사유의 여운으로 나아간다. 소멸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감각되는 것들에 대한 이예지의 회화는 그렇게, 존재의 부재를 응시하고, 그 여운을 현재의 감각으로 호출한다.

정주원 전시전경

정주원의 그림 속 대상들은 정확한 말로 수렴될 수 없는 감각들로 언어와 이미지 사이에서 꿈틀거리며 발화 이전의 상태에 머문다. 이는 마치 발아하는 씨앗처럼, 무엇이 될지는 이미 정해져있지만, 어떻게 자라날지는 모르는 존재들이다. 여러 상태로 뻗어나가는 선들이 모여 자라나는 형상들은 발랄한 회오리, 주춤하다 지지직 그은 선, 무겁고 고집스러운 막대 같은 것들이 되어 한 화면 안에서, 서로를 밀고 건드리며 계속해서 움직인다. 갑자기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몸이 슬쩍 밀리는 기분처럼, 말로는 전할 수 없는 장난스런 관심처럼, 선과 형태들은 상황과 태도를 담는 의태형(形) 혹은 의성형(形)이 된다. 작가는 언어로 환원되지 않는 감각의 잔류들을 수집하고, 회화의 해석적 측면에 은근슬쩍 등을 돌리며 관객에게 슬며시 다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밀어 넣기를 시도한다. 소통에서 발생하는 엉뚱함과 기민한 감정선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신의 회화적 발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을 유도하며 이러한 방식은 의미의 전달이 아닌 감각의 건드림(touch)에 가깝다.

이경주 전시전경

이경주는 여러 칸으로 분할된 관을 만들고, 그 안에 작가가 상정한 캐릭터인 ‘좀비 소녀’의 삶의 단면들을 수납한다. 칸마다 담긴 대상들을 보고 있자면, 정갈하게 모아둔 신체의 일부들, 강박 혹은 집착적인 희망처럼 보여 짠한 마음이 드는 네잎클로버, 사물과 풍경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화면들이 포착된다. 칸칸이 쪼개진 형태의 관은 온전한 신체도, 시체도 담을 수 없는 구조이기에, 분절된 상태로 담긴 대상들은 마치 관의 형태를 흉내 낸 서랍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미 죽음과 비루한 갱생을 거치며 ‘나’라는 온전함을 잃은 전적이 있는 좀비소녀에게, 이 서랍은 단순한 수납의 기능에 머물지 않는다. 관은 오히려 은밀하게 수집해온 것들을 저장하는 ‘쉐도우 박스(shadowbox)’같은 것이 되기도 하고 동시에 이런 저런 삶의 흔적들이 들어찬 닫힌 방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관객은 이를 자유롭게 열고 닫으며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관은 단순히 그림을 보호하거나 돋보이게 하는 액자의 기능을 넘어 의미와 상징을 내포하는 ‘서사의 지지체’가 된다. 즉, 각 칸마다 존재하는 서사적 단서들은 작가가 상정한 ‘좀비 소녀’라는 허구적 인물을 구성하기 위한 장치이다. 좀비소녀라는 사후적 캐릭터는 끊임없이 먹어치우지만 계속해서 허기진 상태를 마주하며 신체의 잔해를 모으고 자신의 관 안에 은밀하게 전시한다. 이는 계속되는 욕망과 이로 인해 해부되는 자아의 모순에 대한 유희적이면서도 비판적인 재구성으로, 풀려고 할수록 더욱 엉키고 마는 실 뭉치처럼 입 안에 머물며 소화되지 못한 채 되풀이되는 혼잣말이다.

진예리 전시전경

진예리는 회화적 행위를 보다 자유롭게 확장하기 위해 OHP필름 여러 장을 연결하여 팔레트로 사용한다. 긁어내고 문지르고 흩뿌려지는 행위가 축적된 결과물로서의 팔레트는, 그림에선 결코 볼 수 없는 레이어의 뒷면을 보여준다. 팔레트의 앞면과 뒷면은 완전히 다른 색채와 구성으로, 작가는 평면의 앞면과 뒷면이라는 양면성과 이중성을 자신의 회화로 끌어들인다. 표면이면서 이면인 것, 그림이 아니면서 그림 같은 것을 가시화하기 위해 팔레트의 양면을 오리고 붙이면서 조형적으로 배합하여 조각을 만든다. 그리고 쓰고 버릴 팔레트를 소중한 물건인 냥 모아온 애착과, 오밀조밀한 조각들을 ‘픽시’라는 요정이 인간이 버린 하찮은 물건들을 보물처럼 간직하는 특성으로 연결한다. 작가는 팔레트로 조각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팔레트를 오려서 그림에 붙이거나, 팔레트에 남은 물감들 위로 레진을 부어 투명하게 포를 떠낸다. 나아가 팔레트를 붙이던 풀(Glue)은 드로잉 재료가 되어 캔버스 위에서 반투명한 선이 된다. 6개의 연결된 회화는 ‘~’혹은 ‘?’의 형태를 연상시키는데, 이는 여기저기를 오가듯 평면과 입체 사이를 들락날락 거리며 빛과 동선에 따라 변화하는 공간적 체험을 유도한다. 관객이 적극적으로 공간을 경험할수록 움직이기 시작하는 모빌 조각들은 자연스레 관객의 동선을 제한함과 동시에 작품에 가까이 다가서게 만든다. 그림 속에 숨어있는 팔레트의 흔적들, 그림과 같은 조형적 태도로 제작된 조각들은, 작고 장난기 많은 픽시가 일부러 길을 잃게 만들고, 물건을 숨기는 등, 장난을 치지만 때때로 도움을 주기도 한다. 결국 그림에 숨어든 팔레트들은 관객을 방해 할지, 도움을 줄지 작은 개입을 노리며 기웃거린다.

이처럼 『Canvas’ Cabinet』은 회화라는 결과물에 수렴되지 않은, 혹은 애초에 수렴되기를 거부한 감각과 기억, 행위와 잔여물들을 수집하고 배치하는 다섯 작가의 이야기이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표면 바깥을 호명하는 이들의 작업은 회화가 봉인한 과거들을 다시 끌어내며, 이들은 마감된 회화의 시간 너머로 몸을 기울여 잘려나간 시작점과 빗겨나간 감각들을 다시 불러내 ‘지금’이라는 입을 빌려 되묻는다. 그리고 이렇게 획득한 목소리는 어느새 회화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굳게 닫힌 표면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하나의 ‘캐비닛’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