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한옥미는 자신의 음악회에서 죽음, 혼란, 기억, 쉼 등의 주제로 음악적 구조를 실험하거나 음악가의 은유라는 형식을 빌린 추상 언어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고백해왔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삶의 대명제가 아닌 어딘지 친숙하게 연상되는 단어를 사용하여 전시를 연다. 한옥미 개인전 《미미, 토토, 해피》는 자신이 키워온 반려견 미미(2000~2013), 토토(2007~2020), 해피(2016~)에 대한 이야기이다. 십 수년간 작곡한 음악들에서 그는 자신과 함께한 개들에 대한 기억을 담아왔다. 이번 전시의 주된 설치에서, 그는 물질화된 숫자와 빛이라는 비물질을 통해 그 기억을 기념한다.
은유적 표현과 추상적 언어로 감추어온 ‘마음의 집’이 있다.
하우스 넘버로 표출된 숫자의 기억은 한 명(命)의 생명체, 그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기록이다.
―작가노트
전시장에 들어서면 관객은 숫자를 읽으며 걷게 된다. 이 숫자는 작가가 미미와 토토를 만났고, 함께했고, 헤어졌던 일생의 시간을 뜻한다. 작가는 이 숫자가 누군가의 집을 방문할 때 만나는 문패처럼 읽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그의 예전 연주회에서 간혹 무대를 가로지르는 긴 악보가 등장하면 연주자는 걸으며 연주를 해야 했다. 그런데 요즘미술 전시장에서, 관객의 걸음을 통해 숫자들이 스쳐 가도록 하는 연출은 그 연주의 퍼포먼스를 닮아있다. 이번 전시의 설치는 그렇게 걷다 멈추고 다시 걷는 행위, ‘산책’에 큰 의미를 두는 것처럼 보인다. 미미와 토토와 함께했던 유모차가 등장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이것은 삶의 반려자인 개들과 함께했던 작곡가의 산책을 몽환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수면 속의 꿈과 일상의 환상은 작곡가의 삶으로부터 온 기억의 단편들―한 줄 일기이다.
사소한 습관, 미소, 그리고 모든 여정 끝의 이별 인사…… 주인? 엄마? 친구? 그 누구였어도 상관없는 나는, 알고 싶다 너희들의 마음을. 내가 걷는 어느 길에나 너희들이 있다.
―작가노트
그의 음악들을 요즘미술 전시장에서 다시 들어보자. 너무나 많은 혹은 친절한 창작의 단서들이 나열된 전시장에서 그의 영상-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가 개들과 함께 산책하며 맡았을 냄새, 소리, 풍경 등을 소리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추상적 언어로 이해되었던 그의 음악은 매우 향기 나고, 무섭고, 서글프고, 사랑하는 섬세한 감정들로 다시 들릴 것이다. 요즘미술과의 인터뷰에서 작곡가는 이렇게 말했다. “결국은 내가 그들의 생각 전부를 알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럴 거라고 추측하는 것들은 상상일 뿐일 수도 있죠.” 전시 《미미, 토토, 해피》는 “너도 들었니?”, “너도 느꼈니?” 하며 한 존재(인간)가 또 다른 존재(개)에게 말을 거는, 인간 한옥미의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글: 박용석
극장 상영작품 목록
전체시간 : 74분 40초
1. Prelude 21 (2021, 13′20″)
2. Souvnir 1 (2022, 10′)
3. Interude for Mimi (2023, 5′)
4. Souvnir 2 (2022, 10′)
5. Interlude for Toto (2024, 10′)
6. Sunday, part 1 (2019, 10′)
7. Sunday, part 2 (2019, 13′20″)
8. Archive 250610 (2025, 3′)
한옥미(작곡가)
서울대 음대 작곡과 졸업 후, 프랑스 파리국립고등음악원(C.N.S.M.P.) 작곡과(사사: Gerard Grisey)와 파리사범음악원 작곡과 최고과정을 졸업했으며, EHESS-IRCAM 현대음악 이론 과정에 수학했고, 다수의 국제 작곡 콩쿠르(Gaudeamuce/ Valentino Bucchi/ MC2-BASS)에 입상했다.
귀국 후 ‘다르게 듣기 music in gallery'(2002 문예진흥원 다원예술부문 후원)를 시작으로, 문화일보갤러리초대전(2003/2004), TENRI cultural Institute gallery(2012, New York) 해외전시까지 개인전 ‘Music Exhibition’을 통하여 2025년 현재까지 작곡, 드로잉, 영상, 설치작업 등으로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6년부터 시작된 ‘이해하기 쉽고 듣기 편한 동시대 음악’을 지향하는 ‘Music Poem’ 시리즈 공연들은 2011년부터 작곡가가 직접 텍스트를 쓰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Storytelling Music’ 형태로 진화되었으며, 2014년에는 실험음악 작업-Performing Art, Music for Stage Setting, Clapping Sound, Abstract Mash Up, Hybrid Music 등-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한 바 있다. 또한 어린이 음악극(2013-2014) 공연과 단편 영화음악(2015) 작업, 재즈/국악 연주가들과 협업(2014-2018) 등 활동의 폭을 넓혀가며, 2016년부터 현재까지 멀티미디어 무대공연에서 작곡가 자신의 Media Art(audio-visual work) 작품으로 다중감각적 음악영상언어 계발에 주력하고 있다.
2004년 제23회 대한민국작곡상을 수상했고, 가톨릭대학교 음악과 작곡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작품활동(작곡)
▪ Music Poem 공연
< 2월의 여름 > (2006)
< 추억의 성(城) > & < 푸른 물의 노래 > (2007)
< Yi Sang Story > (2010 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 기획공연)
▪ Storytelling Music 공연
< Girl at Piano > (2011)
< 인생시계 5시6분 > & < 9:00 AM > (2012)
< A Winter Story > & < With You – 이 세상 모든 이별 후의 에필로그 ) (2013)
▪ Multimedia 공연
< 7 days A week > (2016)
< 숫자의 기억 > (2018)
< Sunday > (2019)
< 21 > (2021)
< 22 > (2022)
< 23 > (2023)
< 20 > (2024)
주차공간이 협소하므로 차량을 이용하시는 관객께서는 도보 5분 거리의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 주차장(종로구 혜화동 1-21, 10분당 800원) 또는 와룡공영주차장(서울 종로구 명륜길 26, 5분 250원) 이용을 부탁드립니다.
《비상시 조각을 깨시오》는 미술이 위기 상황에 개입할 수 있는 물질적, 조형적 가능성을 탐색한다. 과거, 식량을 저장하는 일은 생존의 필수 조건이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문화 속에서 음식은 점차 이미지로 소비되고, 사회적 경험으로 유통되는 기호가 되었다. 이번 전시는 음식에 대한 감각과 인식을 재구성하고, 그것이 생존 수단에서 사회적 상징으로 전환된 과정을 조각 시리즈를 통해 풀어낸다. 이 조각들은 언제든 먹어 치워질 수도 있고, 부패하거나 존치될 수도 있는 상태를 동시에 지닌다. 이러한 불안정한 물질성은 다가오지 않은 위기에 대비하는 잠재적 생존 장치로서의 조각을 제안한다. 소비로부터 유예된 이 사물들은 전시장 안에서 고요히 대기하며, 어느 날 삶의 긴박한 요구에 반응해 작동하기를 기다린다.
<비상 조각: 비축된 조각> 이 조각들은 식재료를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숙성하고 건조한 뒤 밀랍으로 밀봉되었다. 각각의 조각은 대량 생산 체계가 요구하는 기호에 맞게 변형된 동물의 파편화된 형태를 띠고 있으며, 제작 과정은 미라를 만드는 기술과 유사한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고대 피라미드 속 미라가 생명에 대한 신성한 경외를 상징했다면 이 현대의 유물은 생명 인식의 모호한 순간을 유예시키며 소비의 욕구를 일시적으로 지연한다.
<비상 조각: 고지방 오브제> 과거 인류에게 동물성 지방은 생존과 치유의 필수적인 자원이었고 극한의 환경에서는 생명 그 자체였다. 칼로리 과잉 시대에 음식에서 밀려난 ‘지방’은 사회가 무엇을 배제하고 무엇에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드러내며 가치 기준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구성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고지방 오브제’는 관객의 피부로 조금씩 흡수되는 과정에서 감각의 전환이 구현된다. 이 과정에서 작품과 관객의 몸은 물리적으로 연결되고 일종의 보호막을 형성하며 저항 없는 수용을 가능케 한다.
<비상 조각: 완벽한 한 쌍> 이 시계는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Untitled (Perfect Lovers)”에 대한 오마주로 ‘같음’과 ‘다름’, 그리고 시간 속에서 드러나는 불일치에 대해 말한다. 두 쌍의 시계는 동일한 레시피와 조건 아래 제작되었지만, 종균의 반응과 밀가루의 성질에 따라 미세한 차이를 품는다. 사용된 밀가루는 외형상 같은 재료지만, 한 쌍은 한국산 통밀가루와 중국산 통밀가루로, 다른 한 쌍은 한국산 백밀가루와 일본산 백밀가루로 제작되었다. 중국과 일본은 한국과 지정학적으로 인접하지만, 오랜 역사적 충돌과 긴장을 축적해 온 관계이다. ‘밀가루’라는 동일한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같음’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쉽게 구축되고, 또 원산지에 따라 얼마나 빠르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준다.
<비상 조각: 설명서>
<냉장고는 조각을 이해하지 못한다> 참여자 세 명은 자신에게 특별히 소중한 음식과 요리법에 관해 이야기한다. 작가는 각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를 오래 보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가공하여 밀랍으로 봉인한다. 이 오브제는 오랜 시간 저장 가능한 조각이 되어 각자의 냉장고 속으로 되돌아간다. 냉장고는 생존과 소비를 위해 작동하는 장치지만, 이 조각은 그 안에서 먹히지도, 부패하지도 않은 채 미각 이전의 상태로 머문다. 이 작업은 음식에 대한 개인의 기억과 정서가 타인의 손을 거쳐 물질로 변환되고, 새로이 형성된 형태가 다시 삶의 내부로 자리 잡는 과정을 보여준다.
https://www.art-thesedays.com/wp-content/uploads/2025/05/서보경_포스터_web.png15051063arttdhttps://www.art-thesedays.com/wp-content/uploads/2024/05/요즘미술로고-여백-300x129.pngarttd2025-05-17 07:51:252025-06-10 08:35:06서보경 개인전: 비상시 조각을 깨시오
Canvas’ Cabinet은 회화라는 완결된 이미지를 위해 과정적으로 탈락되고, 소외되고, 버려진 수많은 사건들을 복기하여 재구성하는 전시이다. 이를 위해 다섯 작가는 캔버스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다룬다. 김륜아, 이경주, 이예지, 정주원, 진예리는 각자 서랍 속과 머릿속을 뒤적이며 작품의 시작점을 돌이켜 본다. 이들은 완성된 회화 이미지 속에, 아무도 모르게 봉인된 시작점, 작업의 단초가 되던 흩어진 메모들, 과정으로부터 촉발된 우연한 시도의 흔적들을 그러모아 지나간 작업의 과정을 톺아보며 완성이라는 평탄화 과정과 함께 끊어내던 울퉁불퉁한 시간과 공간의 경험을 소환해낸다. 다섯 작가는 그림을 위해 재료들과 맺었던 촉각적 접촉, 압축된 이미지가 되기 이전의 만연체의 말들을 물질적 차원으로 제시하거나, 프레임 밖으로 밀려나 잘려나간 과거의 장면들을 현재라는 감각 안으로 소급하여 형태를 통해 건네는 말 없는 질문들로 이어진다. 이러한 과정은 회화가 그저 입이 없을 뿐, 말이 없는 매체가 아님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의 제목인 캔버스의 캐비닛(canvas’ cabinet)은 자기지시적이면서도 자기복제적이진 않은 함의를 내포한다.
김륜아 전시전경
김륜아는 그리던 대상을 과감히 뒤덮고 재탄생시키는 과정을 반복하며 회화를 완성해나간다. 이때 뒤덮이는 그림은 표면에 덧대어 그려질 대상의 생장을 위한 양분처럼 작동한다.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조각 작업은, 완성된 화면 아래 묻혀있는 대상들을 화면 밖으로 되살려낸 것들이다. 도자조각들은 회화작업에 과정적 모티브로써 개입하고 기여하는데, 이는 그림의 완성을 돕는 것과 동시에 그림의 제물이 된다. 마치 누군가의 무덤 속 유물을 발굴하여 그의 정체를 유추하며 보이지 않는 과거를 반추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김륜아의 조각들은 완성된 표면 아래 매장된 이미지들 현재의 시공간으로 소생시켜 다시금 생명력을 부여한다. 김륜아는 자신과 회화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실과 충돌을 외면하거나 은폐하는 것이 아닌, 어쩌면 사장된 이미지들의 존재를 기억하기 위해 ‘상실 후 애도(grief or mourning)’처럼 존중과 위로를 동시에 표하는 것과 같다. 나아가 자연 건조한 점토 조각들은 전시 중에 관객에게 무료로 나누어진다. 이는 일종의 ‘의례적 장송(葬送)’으로, 작가는 그림에서 밀려나고 지워진 대상들을 완성된 그림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 존재로 ‘남기는’ 것이 아닌 ‘떠나보내는’ 것으로 결정한다. 그렇게 관객에게 건네지는 조각들은, 마치 소각된 유골에서 남은 뼛가루처럼 무게는 가볍지만 존재로는 무거운 잔여물이다. 김륜아는 그것들을 조용히 흩뿌리듯 건넨다. 결국 더는 주인의 것이 아닌, 기억의 유예로 남은 무형의 증거들은 관객의 손으로 전달된다.
이예지 전시전경
이예지의 그림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개들은 길들여진 개라기보다는 들개에 가까운 야생의 느낌을 준다. 가늘고 긴 몸체와 날렵한 듯 단단한 이 개들은, 길 위를 여기 저기 떠돌며 거친 땅 위에 발을 붙이고 서있다. 꼿꼿함과 유연함, 뻣뻣함과 부드러움 사이를 흐르듯 오가는 형상은 개에게서 느낄 수 있는 친밀감과 낯섦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일련의 사건을 경험한 뒤 개를 매개하여 사라진 망자를 불현 듯 떠올리게 되었는데, 이는 단순히 사후세계, 이승과 저승 같은 종교나 신화적 관점에 기댄 상상은 아니었다. 이예지는 망자의 삶을 상상할 때 어렴풋이 스치는 주마등같은 것을 들개를 통해 매개한다. 그 결과 작품 속 개는 마치 경험해 본 적 없는 노인의 시간을 마주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남는 건 그저, 살아온 궤적을 더듬듯 그려보는 일뿐이다. 즉, 들개라는 형상으로 거칠게 요약되고 압축되었지만, 이는 이름 모를 감응된 기억이 망자를 소환하는 것이 아닌 망자의 전신(前身)이 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고 끝나버린 삶의 궤적을 마주하게 되는 낯선 방식의 기억이다. 나아가 작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가버린 시간의 궤적이 남긴, 희미하지만 깊은 잔상을 다른 대상에서도 발견한다. <The Fish Plate>, <In Plain Sight>, <Cremare Speaks>는 기억하고 있으나 기록하지 못한 시간의 잔상을 붙잡아 그려낸 형상이다. 이들은 감각과 기억, 시간과 존재에 대한 사유의 여운으로 나아간다. 소멸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감각되는 것들에 대한 이예지의 회화는 그렇게, 존재의 부재를 응시하고, 그 여운을 현재의 감각으로 호출한다.
정주원 전시전경
정주원의 그림 속 대상들은 정확한 말로 수렴될 수 없는 감각들로 언어와 이미지 사이에서 꿈틀거리며 발화 이전의 상태에 머문다. 이는 마치 발아하는 씨앗처럼, 무엇이 될지는 이미 정해져있지만, 어떻게 자라날지는 모르는 존재들이다. 여러 상태로 뻗어나가는 선들이 모여 자라나는 형상들은 발랄한 회오리, 주춤하다 지지직 그은 선, 무겁고 고집스러운 막대 같은 것들이 되어 한 화면 안에서, 서로를 밀고 건드리며 계속해서 움직인다. 갑자기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몸이 슬쩍 밀리는 기분처럼, 말로는 전할 수 없는 장난스런 관심처럼, 선과 형태들은 상황과 태도를 담는 의태형(形) 혹은 의성형(形)이 된다. 작가는 언어로 환원되지 않는 감각의 잔류들을 수집하고, 회화의 해석적 측면에 은근슬쩍 등을 돌리며 관객에게 슬며시 다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밀어 넣기를 시도한다. 소통에서 발생하는 엉뚱함과 기민한 감정선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신의 회화적 발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을 유도하며 이러한 방식은 의미의 전달이 아닌 감각의 건드림(touch)에 가깝다.
이경주 전시전경
이경주는 여러 칸으로 분할된 관을 만들고, 그 안에 작가가 상정한 캐릭터인 ‘좀비 소녀’의 삶의 단면들을 수납한다. 칸마다 담긴 대상들을 보고 있자면, 정갈하게 모아둔 신체의 일부들, 강박 혹은 집착적인 희망처럼 보여 짠한 마음이 드는 네잎클로버, 사물과 풍경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화면들이 포착된다. 칸칸이 쪼개진 형태의 관은 온전한 신체도, 시체도 담을 수 없는 구조이기에, 분절된 상태로 담긴 대상들은 마치 관의 형태를 흉내 낸 서랍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미 죽음과 비루한 갱생을 거치며 ‘나’라는 온전함을 잃은 전적이 있는 좀비소녀에게, 이 서랍은 단순한 수납의 기능에 머물지 않는다. 관은 오히려 은밀하게 수집해온 것들을 저장하는 ‘쉐도우 박스(shadowbox)’같은 것이 되기도 하고 동시에 이런 저런 삶의 흔적들이 들어찬 닫힌 방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관객은 이를 자유롭게 열고 닫으며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관은 단순히 그림을 보호하거나 돋보이게 하는 액자의 기능을 넘어 의미와 상징을 내포하는 ‘서사의 지지체’가 된다. 즉, 각 칸마다 존재하는 서사적 단서들은 작가가 상정한 ‘좀비 소녀’라는 허구적 인물을 구성하기 위한 장치이다. 좀비소녀라는 사후적 캐릭터는 끊임없이 먹어치우지만 계속해서 허기진 상태를 마주하며 신체의 잔해를 모으고 자신의 관 안에 은밀하게 전시한다. 이는 계속되는 욕망과 이로 인해 해부되는 자아의 모순에 대한 유희적이면서도 비판적인 재구성으로, 풀려고 할수록 더욱 엉키고 마는 실 뭉치처럼 입 안에 머물며 소화되지 못한 채 되풀이되는 혼잣말이다.
진예리 전시전경
진예리는 회화적 행위를 보다 자유롭게 확장하기 위해 OHP필름 여러 장을 연결하여 팔레트로 사용한다. 긁어내고 문지르고 흩뿌려지는 행위가 축적된 결과물로서의 팔레트는, 그림에선 결코 볼 수 없는 레이어의 뒷면을 보여준다. 팔레트의 앞면과 뒷면은 완전히 다른 색채와 구성으로, 작가는 평면의 앞면과 뒷면이라는 양면성과 이중성을 자신의 회화로 끌어들인다. 표면이면서 이면인 것, 그림이 아니면서 그림 같은 것을 가시화하기 위해 팔레트의 양면을 오리고 붙이면서 조형적으로 배합하여 조각을 만든다. 그리고 쓰고 버릴 팔레트를 소중한 물건인 냥 모아온 애착과, 오밀조밀한 조각들을 ‘픽시’라는 요정이 인간이 버린 하찮은 물건들을 보물처럼 간직하는 특성으로 연결한다. 작가는 팔레트로 조각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팔레트를 오려서 그림에 붙이거나, 팔레트에 남은 물감들 위로 레진을 부어 투명하게 포를 떠낸다. 나아가 팔레트를 붙이던 풀(Glue)은 드로잉 재료가 되어 캔버스 위에서 반투명한 선이 된다. 6개의 연결된 회화는 ‘~’혹은 ‘?’의 형태를 연상시키는데, 이는 여기저기를 오가듯 평면과 입체 사이를 들락날락 거리며 빛과 동선에 따라 변화하는 공간적 체험을 유도한다. 관객이 적극적으로 공간을 경험할수록 움직이기 시작하는 모빌 조각들은 자연스레 관객의 동선을 제한함과 동시에 작품에 가까이 다가서게 만든다. 그림 속에 숨어있는 팔레트의 흔적들, 그림과 같은 조형적 태도로 제작된 조각들은, 작고 장난기 많은 픽시가 일부러 길을 잃게 만들고, 물건을 숨기는 등, 장난을 치지만 때때로 도움을 주기도 한다. 결국 그림에 숨어든 팔레트들은 관객을 방해 할지, 도움을 줄지 작은 개입을 노리며 기웃거린다.
이처럼 『Canvas’ Cabinet』은 회화라는 결과물에 수렴되지 않은, 혹은 애초에 수렴되기를 거부한 감각과 기억, 행위와 잔여물들을 수집하고 배치하는 다섯 작가의 이야기이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표면 바깥을 호명하는 이들의 작업은 회화가 봉인한 과거들을 다시 끌어내며, 이들은 마감된 회화의 시간 너머로 몸을 기울여 잘려나간 시작점과 빗겨나간 감각들을 다시 불러내 ‘지금’이라는 입을 빌려 되묻는다. 그리고 이렇게 획득한 목소리는 어느새 회화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굳게 닫힌 표면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하나의 ‘캐비닛’이 된다.
협력: 문정주, 쓰리트리웍스, 체조스튜디오 후원: 요즘미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4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청년예술가도약지원사업 선정 프로젝트
전시제목 《그vs그것》은 로드킬로 떠난 사슴과 동물들을 기록한 2017년 개인전과 동명으로, “인칭대명사인 ‘그’와 지시대명사인 ‘그것’ 사이에서 축은 동물의 몽을 어떻게 지징할 것인가?’ 갈등하는 마음에서 비롯한다. 전시는 ‘그’로 부를 만큼 친밀하지 않지만, ‘그것’으로 부른다면 불편한 감정이 드는 동물과 나의 관계를 신문자료조사(60년대-현재)를 통해 한국 사회로 확장하여 살피고, 인간과 동물 몽의 일부인 미생물 발효물질 연구 과정 안에서 ‘그’와 ‘그것’이 가진 위계적 질서와 구조를 재고한다. 전시는 공장식 축산에 문제를 제기하는 2023년 프로젝트 “스마트 스킨 팜’(2023)을 서로 다른 시기에 진행한 영상 작업과 리서지, 드로잉, 꼴라주 사이로 재배지하고, 수집된 인간의 개인정보와 식물성 미생물의 특징을 결랍해 피부를 맞춤 가공-교환하는 장소로 구성한다. 또한, 인간의 줄생 정보와 색 선호도가 반영된 자(茶)와 당을 먹고, 거시적 크기로 몽을 확장하는 ‘혼랍 중’ 생장 과정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시도 안에서 동물을 무한한 물질 자원이나 수탈의 대상이 아니라, 고유한 역사를 가진 존재로 기억하기를 제안한다.
<스물네 개의 너의 몸에서>(스마트 스킨 팜)
나무로 만든 틀에서 건조한 스물네 개의 식물성 미생물 발효 가축, 3단으로 접히는 원목 프레임 4개 각각 1000 x 1800 x 400(mm), 2023-2024
가축으로 건조된 식물성 미생물은 단일 개제가 아니라, 수많은 다른 개제들이 상호작용 하는 군집으로 존재한다. 40여 중의 자와 당을 먹고 서로 다른 시간에 생장한 미생물 몽에는 식물의 특징과 계절이 무닌와 색깔로 남아있다.
<너는 너를 삼키고>(문정주와 협업)
미생물 배양수조에 부착된 가스센서와 아두이노장지, 단채널 영상, 컬러, 6시간, 2024
디자이너 문정주와 수개월간 아이디어를 교환하며 협업으로 진행한 영상 작업은 미생물의 생성 과정에서 포착한 산소, 이산화탄소, 메탄의 수지 자료를 바탕으로 미생물의 먹고, 먹히는 관계 안에서 변주하는 몽의 운동을 시각화한다. 하루 6시간 동안 스크린 안에서 성장하는 가상의 미생물은 전시 기간동안 매일 무형에서 색깔을 가진 몽으로 재생과 순환을 반복한다.
<미생물 배양일지>
Miro 온라인 화이트보드 플랫폼, 2022-2024
2022년 7월부터 배양하기 시작한 미생물의 생장과정을 기록한다. 인위적으로 조절한 환경변화의 횟수에 따라 세대수를 구분하고, 이동에 따른 거주지의 전복, 외부 박테리아 짐입과 부분적 탈락을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한다. 관람자는 화면을 직접 검지로 조정하여 위 아래로 이동할 수 있으며, 엄지와 검지로 부분 확장, 축소하여 관람할 수 있다.
<나의 사슴에게>
단채널영상, 컬러, 6분9조 2022(재편집 2024)
2022년 스위스 레지던시에 잠가하며 진행한 작업으로, 작업실 장문 밖으로 펼쳐진 레만호수와 국경 너머의 프랑스 산을 바라보며 한반도에서 고립된 사슴에게 영상 형식의 편지를 쓴다. 국제 멸종위기종인 고라니의 대만-중국-영국-프랑스의 이동 경로를 주적하는 조사 과정을 바탕으로 쓰인 편지는 제국주의 시대의 사슴사냥과 교역에 주목하고, 사슴을 교환/거래되는 ‘몽’으로서 되짚는다. 국경을 지우고 픽셀화한 세계지도는 고라니가 처한 멸절과 고립의 상황을 인류 공동의 문제로 되돌리고, 이름 없는 축음을 가시화하는 장지로써 사용한다.
<두번째 전시 : IIJ로 쓴 우리 역사, 전설의 게임으로 비상!>
신문자료수집(60년대-현재), 신문크기로 시트지 인쇄, 2017-2024
위태로운 동물의 삶을 재현한 사진 이미지는 20세기 신문 지면에서 종종 인간의 안락하고 자유로운, 건강한 삶을 제시하는 광고와 병지되고, 이러한 광고전략은 빈곤과 재난에 직면한 삶을 타자화하는 방식으로 반복된다. 개별 기사를 검색하고, 클릭을 통해 경험하는 21세기 디지털 신문에서는 검색된 기사에 따라 빅테이터와 연동된 맞춤형 광고를 노줄한다. 동물 이미지가 실린 기사를 반복 검색하여 광고 이미지와의 관계를 포착한 화면에는 동물사냥 게임, 동물의 형태를 모방한 인형과 열쇠고리 등의 광고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이 배지되어 있다. 수집한 광고 이미지에서 선별한 단어, 측 ‘우리, IlJ로, 약, 비상, 전시, 게임’이 가진 다면적 정의는 기사와 광고 이미지를 동시에 지시하는 한편, 서로 다른 문맥 사이에서 발견되는 서늘한 심상을 제시한다.
<스마트 스킨 팜>
나무로 만든 선반 위에 미생물 가축과 수조, 2000 x 1000 x 1500(mm) 2022-2024
2023년 프로젝트 “스마트 스킨 팜’에서 소개한 작업으로, 원형 수조 안에서 미생물의 기호를 실험하고 가축 샘플을 가공한다. 올해에는 2022-2023년에 가공한 가축 샘플의 형태를 보존/보관하기 위한 장지를 실험하였다.
<균류식물혼합동물사전 |, ||, 균류식물혼합동물목록>
종이에 인쇄, 148 x 210(mm) 2024
식물성 미생물이 먹이로 제공된 자(茶)종과 계절의 변화에 따라 변주한 가축의 색깔과 모양을 동물과 광물의 관계로 연결하고, 크기를 확장하여 배양한 가축을 시각적 특징에 따라 새로운 이름으로 분류한다. 2023년 프로젝트 “스마트 스킨 팜’에서 수집한 인간의 개인정보, 측 이름, 생년월일, 색깔 취향을 자(茶)종과 1:1로 매징하고, 새로운 이름으로 분류한다.
<기억극장 : 그리스로마신화, 기억극장 : 미생물펀 |, ||>
종이에 꼴라츄 800 x 600(mm) 2024
2023년 프로젝트 “스마트 스킨 팜’의 내용과 형식의 모티브가 되었던 기억극장(길리오 카밀로,이탈리아 1519-1544)은 우주의 탄생에서 줄발하여 유럽 사회에서 상업자본주의가 줄현하는 16세기까지 신화적 상징 제계로 기록한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은 태양과 달, 물과 불, 땅과 하늘의 환경을 지시하는 라틴어 어원에서 비롯되었고, 이들의 서사는 여러 동물과의 관계에서 구성된다. 19세기 후반부터 연구되기 시작한 미생물의 학명 중 많은 수가 이러한 신화적 이름을 자용하여 지어졌다는 사실에서 착안한 두 개의 드로잉은 교자하는 이름들 사이에서 지구의 시간을 매개하는 존재들을 발견한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종이에 꼴라츄 13점, 2020-2024
2020년에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에서 여러 분야의 장작자들과 람께 동물의 축음을 기리는 거리 행진을 기획했다. 코로나로 인해 기획은 무산되었지만, 행진을 위한 기(flag)를 제작하기 위해 진행한 작업 4점 및 식물성 미생물의 개별적 특징을 기록하는 작업 등 을 소개한다.
<몸을 교환해 드립니다>(스마트 스킨 팜)
나무로 만든 선반 위에 미생물 가축과 수조 1200 x 1000 x 1500(mm) 2023-2024
2023년 프로젝트 “스바트 스킨 팜’에서 관람자의 개인정보를 수집하여 2024년에 가죽을 맞춤 가공하였다. 개인정보 제공자는 작가가 전시장에 상주하는 날짜(매주 목, 금, 일요일)에 방문하여 자신의 가죽을 잦아갈 수 있다.
잘 읽을 수 있는 문자가 기능과 효율성을 담당한다면, 잘 읽을 수 없는 문자는 쪼개지고 변형되고 파편화됨으로 인하여 오히려 ‘효율적이거나 기능적이지 못함’을 지시하는 기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전시는 육아를 시작하게 된 작가가 처하게 된 ‘업무를 수행할 수 없고’, ‘작가로 활동하기 어려운’ 상황을 “문자의 바깥”으로 비유하며, 이를 미술언어를 통한 대안적 공간으로 제시한다. 누르는 버튼, 밟는 매트, 옮기는 모형, 접는 종이 등 육아 경험과 연관되는 촉각적 요소들은 문자와 언어, 즉 효율적 정보전달 체계와 동시대 담론 속에서 놓치기 쉬운 일상적 감각들을 환기한다. 작가는 탈-기능화된 문자들의 조형언어를 통해 기능성과 효율성으로 대변되는 지배적 가치체계에 질문을 던지고, 체계 바깥의 주체들과 문자화되지 않은 존재방식들로 사유를 확장하고자 한다.
자기묘사장치 (LED, PETG, 사진, 영상, 혼합매체, 가변설치, 2024)
나는 육아와 일과 작업을 병행하기 버거운 현재 나의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명료한 단어나 개념을 발굴하는 대신, 이를 묘사하기 용이한 하나의 장치를 개발하고자 하였다. 디지털 시계와 같이 생긴 본 장치에는 본인의 역할을 지시하는 세 개의 단어(작가, 남편, 아빠)가 중첩되어 있으나, 각각의 LED 유닛이 무작위적으로 켜지는 작동방식으로 인해 하나의 단어가 온전히 구현되기는 매우 어렵다. 장치를 통해 생산되는 읽을 수 없는 이미지들은 다수의 역할 속에서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주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개인을 암시한다.
문자의 바깥에서 (커팅된 퍼즐매트, 가변설치, 2024)
작업에서 나는 실존하지 않는 문자들, 즉 기존 체계의 문자와 문자 사이 어딘가에 끼어있을 것처럼 상상되는 형태들을 디자인하였다. 이것은 어딘가에 명확하게 소속되어있지 못한 내가 처해있는 상황과, 문자화-담론화되지 못하는 개인의 존재방식에 대한 기념비이다. 본 작업에서 어린이들에게 문자 체계를 교육하는 수단으로 자주 쓰이는 놀이매트는 체계 바깥을 상상하기 위한 유쾌하고 촉각적인 설치형식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이것은 본인이 미술가로 살아가면서 자녀들에게 교육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문자게임 (PLA, 혼합매체, 영상, 가변설치, 2024)
영상 속에서 나와 아내는 각자의 직업을 지시하는 두 단어(현대미술가/정규직노동자)를 사이에 두고, 자신의 삶에 바라는 것을 번갈아 말하면서 그 바람에 어울리는 직업 쪽으로 자모음을 옮긴다. 게임판 위 부족한 자모음의 개수는 가족 내의 한정된 자원을 암시하며 어느 한쪽의 직업이 단어로써 완성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본 작업에서 직업은 개인이 일생동안 성취해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관계와 조건, 사적 바람들에 의해 변해가는 삶의 한 방식으로 비쳐진다.
3인 가족을 위한 종이비행기 (종이에 프린트, 사진, 가변설치, 2023)
나는 결국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날리는 종이비행기 놀이가 예술행위와 닮았다고 생각하고 세 사람(작품구상 당시 본인의 가족구성원 수)이 함께 날리는 형태의 종이비행기를 고안하였다. (하지만 나의 아들은 아직 너무 어렸고 작품 촬영에 협조해주지 않았다.)
벽을 치는 타이프라이터의 활자 장치, 바닥과 천장 그리고 여러 벽들로 향하는 관들, 몇 개의 모스부호의 신호가 설치되어 있다. 서로 연결점이 있는 것도 아닌 것도 같이 설치된 공간의 모습은 한 이야기 구조와 관계가 있으며, 이것들은 내레이터의 음성과 사운드에 의해 점점 드러난다.
핵심적 영감
카프카는 편지가 오지 않으면 악마가 편지를 붙잡아 놓았다고, 실제로 만나기로 했을 때는 만남의 불안으로 인해 그 자신이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가는 통로에 내던지고 그러나 그곳이 아닌 암벽에 부딪히게 되고 그래서 새 통로를 다시 파야 된다고 한다. 그렇게 집착하던 편지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낄 때는 “편지가 나를 항상 기만했습니다. 그것도 나 자신이 쓴 편지 말입니다. 손쉽게 편지를 쓸 수 있는 가능성은 틀림없이 ―다만 이론적으로 볼 때 ―영혼의 섬뜩한 혼란을 세상에 가져온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그것은 유령과의 교신인데, 그것도 편지의 수신자로서의 유령과의 교신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유령과의 교신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한다. 또한 “편지에 쓰인 키스는 보내질 장소에 도착하지 못하고, 유령이 도중에 홀딱 마셔버리는데, 편지를 마셔버린 유령들은 엄청나게 불어나게 되고 인류는 이것에 대항하여 철도며, 자동차며, 비행기 따위를 발명하였으나 그 반대편은 훨씬 강력해져 우편 다음에 전신 전화, 무선 전신 등을 발명해 냈고 결국 인류가 몰락할 것”이라고 말한다.
설치와 연출
작품의 설치는 타이프라이터에서 활자를 치는 부분만을 떼어내어 만든 기계로 시작된다. 이것들은 큰 사이즈로 알파벳 숫자에 맞춰 제작되었고 각 알파벳은 프린트되는 것이 아니라 벽에 구멍이 나도록 사방의 벽을 친다.
실제로 전시장의 벽을 깨지는 않지만, 벽 안에 통로로 연결된 것 같은 공기압 우편통 구조를 시각화한다. 이것들은 카프카가, 밀레나와 만남에 대한 불안에서, 그녀에게 가는 통로에 내던져지고 ‘출발하지 마세요’라는 신호를 받고 굴을 파 돌아가고 다시 다른 곳을 새로 파야 한다는 바로 그러한 굴과 같은 통로이기도 하다. 작가의 상상에서는 이 굴은 우주 공간에 있을 만한 웜홀(wormhole)처럼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통로이기도 하다.
이러한 설치에 카프카가 밀레나에게 쓴 편지의 발췌와 그것을 기초로 하여 본인의 상상이 첨부된 이야기, 즉 카프카 그 자신이/그 자신의 유령이 우편물의 통로에 들어가게 되어 밀레나를 찾아 시공간을 알 수 없는 세계를 부유하는 내용이 내레이터에 의해 펼쳐진다.
타이프라이터 장치와 편지 통로들의 공간 설치, 모스 코드를 전달하는 아주 작은 LED의 빛은 이들 장치의 기계 소리, 내레이터의 음성, 음악과 함께 기괴한 무대장치가 되고 그 자체가 카프카/그 자신의 유령이 이끄는 하나의 드라마를 연출한다.
이 기획은 올해 2월 집 앞인데도 잘 가지 않던 도서관에서 우리말 의성어 사전을 보다가 발견한 ‘푸하하’로부터 시작되었다. 평소 SNS에서 약자로만 자주 사용하던 푸하하가 어엿하게 사전에 올라 있는 말임을 알았을 때 반가움에 눈을 빛내며 내게 큰 웃음을 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웃음을 일으키며 전달했던 이야기들은 재미있게 포장된 슬픔이거나 어려움 들이었다. 그런 내용을 지친다거나 지겹다는 느낌 없이 들을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질문하며 유머가 있는 작품들을 모아서 소개할 궁리를 하게 되었다. 리서치 방향은 유머를 말할 때 흔히 따라붙는 풍자가 들어 있지 않은 작품을 찾는 쪽으로 흘렀다. 상대를 비웃거나 과장하며 자아내는 웃음보다 자기 형편을 꼼꼼하게 살피며 속마음을 용기 있게 드러낼 때 터지는 웃음이 더 크고 상쾌했던 경험 때문이었다. 한 심리학자가 연구한 대로 행복이 생존에 필요한 도구이고 행복을 표현하는 한 방식이 웃음이라면 불쾌한 웃음보다 상쾌한 웃음이 지난한 과제를 풀며 사는 인생에 더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다 같이 웃게 되는 행복한 순간들을 자주 만들어서 서로 오래 미술을 하며 살고 싶은 마음으로 이 전시를 오픈한다.
김정은(기획자)
김다겸 Kim Dakyum 연극적 태도를 중요하게 여기며 작업하는 김다겸은 자신의 작품을 과잉된 감정으로 가득 찬 시나리오에 비유한다. 그런 감정들에 어울리는 매체와 재료를 선택하고 규칙을 만들고, 과거와 현재를 섞어서 필요한 요소를 꺼내 이야기가 잘 전달될 수 있는 방법과 좀 더 가깝게 이해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 앎과 삶을 위해 작업한다.
<달리기 – 짐 하인스를 위하여> Running – For Jim Hines SD 비디오, 투 채널, 02:48, 2015 최초로 100m 달리기 공식기록 10초의 벽을 넘은 육상 선수 짐 하인스(James ‘Jim’ Ray Hines)에 대한 정보를 추적하며 든 생각과 어릴 적 달리기를 하며 든 마음에서 비롯된 작업이다. 카메라의 타이머를 10초에 맞추고 셔터가 눌리는 동시에 수행자가 달린다. 달리는 수행자가 10초 안에 100 미터를 완주하지 못하면 10초를 기다린 카메라가 셔터 소리를 내며 수행자를 찍게 된다. 수행자는 카메라에 찍히지 않을 때까지 달리기를 반복한다. 영상은 출발선과 결승선 양쪽에서 달리는 수행자를 촬영한 기록이다.
김다겸 + 박노완 Kim Dakyum + Park Nohwan
<프레카리오 시티> Precario City 혼합재료로 만든 보드게임, 가변크기, 2023 불안정 노동 무산계급을 뜻하는 프레카리아트 precariat는 프레카리오 precario와 프롤레타리아트 proletariat를 합성한 신조어이다. 이중에서 precario(이탈리아어: 불안정한)를 도시의 이름으로 정했다. 세계관과 플레이에 필요한 조건, 규칙 들을 만들어 관객과 마스터, 혹은 관객들끼리 서로 즐길 수 있는 보드게임 형태를 갖추었다.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들은 돈을 벌고 차와 집도 사고 예치이자와 빚도 낼 수 있다. 그러면서 체력과 병을 얻기도 하고 마음과 성향을 조절하며 능력도 쌓아야 한다. 이 도시는 과거의 폐허 속에서 예술을 인생의 중요한 가치로 두는 세계이며, 어떻게든 예술과 관련된 무언가를 행하며 살아야 하는 생존 게임의 장이다. 2인전을 계기로 두 작가가 협업하여 만들게 되었다.
기비안 KIBIAN 역사, 문화, 지리적 은유 및 구전 전통 등 장소에 축적된 이야기 재료를 모아 자신의 이야기와 뒤섞는 작업을 한다.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 유무형의 인류지식이 지구 위를 순환하는 것 등에 관심이 있으며, 신체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시대와 장소 그리고 신체의 이동을 창작의 가장 큰 동력으로 삼는다. 예술과 관객이 만나는 지점에 의문을 가지고 화이트 큐브를 벗어난 커뮤니티 작업, 연극, 다큐멘터리, 장애 예술, 공공 참여 프로젝트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 왔다.
Nach em Rääge schiint d’Sunne <나흐 엄 라긔 슈인 쭌터> DV 6mm, 03:10, 2003 신문으로 스위스 전통의상인 트라흐트를 만들어 입고 알프스 산맥에 자리한 그림 같은 마을 그슈타드 Gstaad를 배경으로 촬영하였다. 작가가 그슈타드에서 6주간 머물던 갤러리에는 매일 지역신문이 배달되었다. 스위스 말을 모르는 작가는 이 신문을 몸에 걸치고 나가 행인들에게 기사를 영어로 얘기해 달라고 하였다. 기념품 가게에 진열된 스위스 전통의상 트라흐트를 본 날, 트라흐트와 이방인인 자신이 쇼윈도 유리에 겹쳐 비치는 걸 보며 알고 있지만 떠올리지 않는 것들, 존재하지만 기억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며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 영상에 흐르는 음악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요들(스위스 민요)이다. 작가는 이 노래의 속도를 달리하여 15개 트랙을 만들고 뒷목 언저리에 매달린 CD 플레이어로 노래를 들으면서 빠르거나 느리게 립싱크를 한다. 그로 인해 표준속도로 편집된 영상의 배경은 제멋대로 움직이고, 종이 옷을 입고 노래하는 주인공은 모호한 존재가 되어 떠돈다.
아자니스 찰리 Ajahnis Charley 흑인이며 논바이너리 코미디언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코미디 페스티벌인 Just For Laughs에서 코미디계 신예로 소개되었으며 코미디언을 위한 글을 쓰고 방송용 코미디 시리즈를 위해 스토리 에디터로도 활동했다. 캐나다 국립영화 위원회 The National Film Board가 제작지원한 이 작품은 찰리의 감독 데뷔작으로 인사이드 아웃, 캐리비안테일즈 같은 국제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나는 게이입니다> I Am Gay HD 비디오, 10:00, 2020 5년 동안 외국에서 활동하던 아자니스가 코비드19로 온 세계가 극심한 공포에 빠진 시기에 격리를 위해 캐나다 오샤와에 있는 집으로 오랜만에 돌아온다. 아자니스는 집에 있는 동안 자기에 관한 진실 하나를 가족에게 밝힐 계획을 세워 두고 있다. 아자니스가 세 형제들을 비롯하여 어머니와 나누는 대화에서 가족에게 바라는 점을 엿볼 수 있다.
커스틴 존슨 Kirsten Johnson 커스틴 존슨은 어느 한 쪽은 성공하겠지 생각하며 미술과 연기를 모두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10대에 이미 전문 초상화가로 일했고 오필리아 역을 맡아 8시간 동안 햄릿을 공연하기도 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컬렉터가 있는 화가와 배우로서 활동을 계속하다가 미술, 퍼포먼스, 연출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까지 전부 동원하여 정체성과 개인적 탐구를 주제로 단편 영화를 여러 편 만들었다.
<나는 변화가 싫어요> I Hate Change 디지털 테이프, 18:40, 2013 커스틴 존슨의 작업실이 있는 건물이 콘도 개발업자에게 넘어갔다. 13년 동안 사용하던 작업실에서 25일 후에 퇴실해야 하는 존슨은 애니메이션과 변신, 즉흥 연기 들을 동원하여 빠른 전개 방식으로 하루하루 달라지는 심리 상태를 기록한다. 변화에 집착하는 도시에서 미술가로 사는 문제를 돌아보며 25일 동안 구상하고 글을 쓰고 촬영하면서 25가지 슬픔의 단계를 경험했다고 한다.
브라이언 코네프스키 Bryan Konefsky 미국 뉴맥시코 앨버커키에서 살며 작업한다. 국제 실험영화 페스티벌인 Experiments in Cinema international film festival 디렉터이자 미국에 몇 개 남지 않은 1세대 소극장 영화 상영프로그램인 베이스먼트 필름 Basement Films 대표이기도 하다. 미국, 러시아, 세르비아, 스페인, 모로코, 독일, 쿠바, 아르헨티나에서 실험영화를 내용으로 한 강의와 전시를 한 바 있으며 여름마다 한국을 방문하여 동국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원하는 대로: 국내테러 대비훈련> Have It Your Way: an exercise in domestic terrorism HD 비디오, 04:06, 2017 한 사회에서 테러리즘이 작동하는 방식을 소비자와 패스트푸드 관점으로 살펴 본다. 맥도날드와 버거킹에 드리운 자본주의 책략이 게릴라식 공격으로 보이는 개입에 어이없이 뒤틀린다.
브라이언 자니스니크 Bryan Zanisnik 미국 뉴저지 유니온에서 태어나 지금은 뉴욕과 캐츠킬 산맥을 오가며 살고 있다. 부조리한 요소를 넣은 비디오, 공연, 설치, 사진을 제작하여 자전적 이야기와 사회 문제를 함께 다룬다. MoMA PS1과 브루클린 뮤지엄 등 유수한 미술 공간에서 전시와 퍼포먼스를 이어가고 있으며 Art21 다큐멘터리 시리즈 뉴욕 클로즈업에 소개되었다.
<밧줄 너머> Further From Rope SD 비디오, 02:56, 2009 겉보기에는 아버지가 실종된 아들을 찾는 단순한 이야기이다. 실제로 작가의 아버지인 중년 남자는 연장코드를 연결한 가정용 램프를 들고 늦은 오후에 아들을 찾아 집을 나선다. 이웃들 집과 거리를 지나 캄캄한 숲속에 다다른 아버지 뒤를 집안 콘센트와 램프를 연결하는 선들이 줄지어 따른다. 이 모습은 아들을 찾으려는 아버지의 진심과 맞물리며 긴장감을 자아낸다.
즈비안 Zviane 몬트리올 교외 도시 롱괴유에서 태어났다. 만화가이면서 몬트리올 대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한 음악 선생이기도 하다. 2004년 이래로 즈비안이 창작한 그래픽 노블과 만화책이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퀘백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순수한 어린 시절> Sweet Childhood HD 비디오, 03:30, 2017 이 작품에는 두 내레이터가 등장한다. 즈비안의 현재 목소리와 어릴 적 목소리이다. 어릴 적 목소리는 실제로 30년 전에 녹음되었다. 즈비안이 이사를 하려고 짐을 싸다가 우연히 발견한 오디오테이프에 이 목소리가 실려 있었다. 어른 즈비안이 다양한 기술을 적용하여 천진난만한 아이의 드로잉처럼 보이게 만든 이미지들과 어린 즈비안이 이해한 세상을 들어볼 수 있는 이야기가 결합되어 그야말로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보여 주는 단편 애니메이션이 탄생했다.
전시는 결혼과 동거 사이의 생활 속에서 형태의 불확실성을 느끼고 거슬리는 일상의 순간들을 마주한 과정을 담는다. 부유하기 상태에서 한 쪽을 선택하기보다 그 사이를 헤엄쳐 보기로 하면서 결혼하거나 동거의 상태에 있는 여성들에게서 소음, 타협, 불협화음, 조율을 전해 듣는다. 모호하게 경계 위에 놓인 것이 살아감을 더디게 하고 작가로서의 자신을 삐걱거리게 하는 상태가 아니라 같음을 통해 다름을 찾고, 다름을 통해 비슷함을 받아들이는 유연한 상태임을 말한다. 전시를 통해 동거는 소음, 타협, 불협화음, 조율과 기꺼이 살아간다는 의미로 다름의 고유한 시간을 함부로 경계 짓지 않는, 어떤 또 다른 방식의 사랑의 마음이자 모두가 다른 모양의 집을 구축할 수 있는 삶의 태도로 현시된다.
<사랑하는 우리의 머리카락> 2022, 머리카락 설치 후 사진기록, 타일에 인쇄
나와 파트너는 같이 살고 있지만 혼인신고는 하지 않기로 했다. 결혼과 동거의 중간 즈음에 속하는 사이에서 ‘우리’가 되고 싶기도, ‘너와 나’로 남고 싶기도 했다. 이러한 모순된 감정을 지속적으로 느끼며 화장실에서 머리카락으로 서로에게 4달간 메시지를 남겼다. 머리카락은 사랑의 언어에서 불편감의 언어로 그리고 다시 사랑의 언어로 반복해서 사라지고 나타난다.
<커튼> 2021, 페브릭에 인쇄, 5장의 사진기록, 영상, 1분 51초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동거하는 여성들과 그들의 동거 경험을 대화했다. 대화의 내용 은 커튼으로 제작되었으며 그 중 하나는 작가의 것으로, 각각의 여성 집의 거실에 설치 후 촬영되었다. 외부를 가리는 용도인 커튼은 동거하는 여성들의 개인의 상황이 사회적으로 노출될 때 그들이 느끼는 지점들을 반영한다.
*커튼 중 한 여성은 자신의 커튼이 전시장에 걸리기를 원하지 않았고, 여닫는 영상 이미지 에 동의했다.
<결혼 생활> 2022, 5개의 식탁보 위에 글씨
혼인신고 통해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여성 지인들을 만나 그들의 집 식탁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이 시간 동안 고민과 공감 그리고 차이점에 대해 대화하며 함께 식탁보에 흔적을 남겼다.
<둘> 2024, 사진, 10.2 x 15.2 cm 6개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모습들에 대한 기록이다.
<친밀한 탱고> 2022, 투채널 영상, 3분 33초
나와 파트너는 서로에게 한 번도 요구한 적 없는, 생물학적 성별에 따른 사회 가 정한 의무를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개인의 몫을 해내고 있음에도 기생 하고 있는 것만 같은 상황과, 책임져 달라고 말한 적 없는 상대방을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출발점으로 시작했다. 탱고는 팀워크가 필요한 춤이지만 주로 남성에 의해 리드되고 여성은 이를 따르는 팔로워의 역할을 맡는다.
<나의 집들> 2024, 타프 설치, 3개의 오브제, 영상, 6분 45초
내가 선택한 세 가족은 모두가 함께 살지 않는다. 나는 가족이라는 단어를 집단 의 형태보다 관계로서의 의미에 무게를 두고 애정과 불편감을 동반한 나의 집들을 기록했 다. 상황에 맞게 가변될 수 있는 타프는 나를 중심으로 맺는 관계에 따라 구성되는 방식과 형태가 달라짐을 보여주는 임시적 장소로 기능한다. 영상 속 배경은 내가 거주 또는 일하는 곳으로 각 대상들과 가깝게 느끼는 장소이며, 세가지 오브제들은 각각, 진수와 내가 서로가 싫어하는 것, 영식의 장난감인 나의 양말과 그의 털에 관한 것, 유나와 내가 주고 받았던 책 과 꽃의 기록 그리고 개인전 축하를 위해 유나가 보내준 꽃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쪽 또는 저쪽에 정확히 속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또렷하 다. 그 틈에서 어떤 것도 택하지 못했던 나의 일상은, 바깥 에서 내 방 유리창을 불규칙하게 두들기는 소리를 내며 거 슬리게 했던 알 수 없는 물체를 바라보던 일과 닮았다. 무 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찾아서 떼어내 버릴 수 도 내 방을 떠날 수도 없던 나의 태도로 인해 나는 또렷하 게 말할 수 없었고 지금을 살아가는 나, 작가로서의 나 모 두를 미심쩍어하며 부유했다.
의심하기를 멈추고, 사이를 부유하는 상태를 나의 의지적 인 움직임으로 만들기로 하면서 나는 발언을 하기 위한 나 의 분명한 목소리를 찾기보다는 이쪽 저쪽 헤엄쳐 떠다니 며 일상에서 거슬리게 덜컹거리는 소리들을 들었다. 다르 다고 분리했던 곳에서 비슷한 소리를, 비슷하다고 여겼던 곳에서 어긋나는 소리를 들으며 많은 것이 사실은 경계 위 에서 모호하게 부유하고 있음을 느꼈다. 둘로 나뉘는 경계 가 무의미해지고 분명한 선택은 불필요했다. 나는 한쪽에 만 있었다면 들을 수 없던 불분명한 것들을 모아 내 방 유 리창을 불규칙하게 두들겼던 그 물체들을 눈앞에 가져오 려고 했다. 그 물체들의 구현은 내가 경험한, 그리고 이쪽 과 저쪽에서 만난 이들에게 전해 들었던 소음, 타협, 불협 화음, 조율이 가지는 의미와 가능성에 의지한다. 소음, 타 협, 불협화음, 조율 – 자의로 기꺼이 이것들과 동거하며 살 아간다는 것은 다른 삶의 방식들을 내 옆에 두며 내가 알지 못하는 고유한 시간들을 함부로 경계 긋지 않는, 어떤 또 다른 방식의 사랑의 마음이라고 여긴다.
‘요즘미술’은 작가 중심으로 이루어진 공간으로 현재 언저리 시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는 예술가들이 전시하고 연구하고 교육하는 곳입니다. ‘요즘미술’의 전시는 특이한 재능보다 특별한 태도를, 완결된 작품보다 진행형 작업을 귀하게 여깁니다. 최신을 좇는 조급한 마음보다 느릿하더라도 요즘 고민들을 풀어놓고 섬세한 감각과 날카로운 시선을 지닌 작가들의 프로젝트를 존중하는 전시공간이 되고자 합니다. ‘
요즘미술’의 시작을 열어줄 박용석, 오인환, 이미혜 작가는 이러한 요즘미술의 방향성을 공유합니다. 2000년에 처음 만난 세 작가는 사회와 예술 현장을 동시적으로 감격하고 분노하며, 서로의 생활과 작업을 지적하고 흠모하면서 감화해 왔습니다. 이번 개관전은 작가로서 서로에게 ‘안녕’을 물으며 각자의 작업 태도와 방향을 엮어 봄으로써 ‘요즘미술’의 방향을 함께 엿보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이미혜 Meehye Lee <국민알파벳-d>_현수막 원단에 UV-print, 사진 촬영용 배경지 거치대, 사진 촬영 조명, 디지털 프린트, 동영상_가변크기_2022(2024 요즘미술 버전)
대체 이 d는 무엇인가? 왜 하필이면 d인가? ‘d’는 디앤디파트먼트 제주(d&department JEJU)의 건물 외벽에 그려진 로고다. 2022년 당시 제주도에 가면 이 ‘d’ 앞에서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리는 것이 국룰이었다. 알파벳 소문자 ‘d’가 그려진 회색의 시멘트벽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하나의 촬영 지침을 따르기라도 한 듯 유사한 구도와 포즈,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는 점은 더 놀라웠다.
“National-d”는 남들이 다 가는 곳에 나도 가서, 남들이 다 본 것을 나도 보고, 남들이 다 한 것을 나도 했다’는 집단적인 행동 패턴을 가시화한 작품이다. ‘d’가 그려진 디앤디파트먼트 제주의 외벽과 바닥을 촬영하고 프린트해서 만든 포토 스튜디오와 인스타그램에서 다운로드한 사진들, 인생샷 십계명, 그리고 디앤디파트먼트 제주 현장을 기록한 동영상으로 구성된다.
이 작품은 2022년 독일 라이프치히 현대미술관(GfZK Leipzig)에서 처음 전시되었는데, 4개월의 전시기간 동안 그곳에서 촬영된 가짜 ‘d’들이 한국의 진짜 ‘d’들 사이로 잠입해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소셜 미디어에 의해 야기되는 집단주의 문화를 교란시키고자 했다.
박용석 PARK Yong-seok <소녀상>_책_190x235cm(10권)_2014-2023(제작 2024)
나의 사진에는 조각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 작업은 두 가지 전제에서 시작된다. 첫째, 조각을 예찬하는 작업이 아니고 둘째, 존재를 부정하는 작업이 아니다. 만약 사진 속에 조각이 있었다면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조각의 모습에 안도하는 작업일 것이고 만약 조각을 부정하고자 했다면 수고롭게 오랫동안 규칙적으로 찍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나는 대신 두 가지 풍경에 시선을 안내한다. 첫째, 조각 주변에 남겨놓은 목도리, 인형, 꽃 등의 사물이다. 그것은 미안함, 분노, 위로 등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들을 대변한다. 둘째, 푯말, 지킴, 시위, 다툼 같은 활동들이다. 이것은 이념, 젠더, 환경, 정치 등의 사회문제가 갈등하는 현장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렇게 매주 10년간 사진을 찍는 작업은 현재 우리의 모습을 찍은 과거들이다. 사람들이 ‘소녀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평화비>의 제목을 정확히 모르고 조각의 소녀 이미지 때문에 그렇게 불리어졌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없지만 있는 어떤 ‘소녀상’을 호명한다면 그 대상이 우리의 어떤 모습들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진 제목을 <소녀상>이라 하였다.
박용석 PARK Yong-seok <칭찬달력>_달력에 스티커다양한 크기_2014-현재 진행중
나는 달력에 스스로 칭찬하는 행위를 했다. 이 달력들은 우연찮게도 <소녀상> 작업을 시작한 해와 겹치는데 이 달력을 보고 있으면 채워진 스티커와 비어있는 날짜들 모두를 통해 ‘살아간다’는 ‘호흡’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의 출발은 참여자들이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했던 자신만의 사각지대(장소)를 찾아가는 다수의 안내문들을 하나로 연결하여 ‘사각지대를 찾아가는 종합적인 길 안내문’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서울과 로스앤젤레스에서 길 안내문의 지시를 따라서 사각지대를 찾아가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퍼포먼스의 과정은 작가가 하늘을 향해 들고 다니는 비디오카메라에 의해 기록된다. 동일한 길 안내문을 따라 이동하는 퍼포먼스를 다양한 도시에서 실행할 때 일치 또는 불일치들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변화하는 장소에서 동일한 지시문은 반복하는 퍼포먼스는 달라진 문맥에서 지시문을 해석하는 과정이다. 또한 분명히 존재하지만 도달할 수 없는 사각지대를 찾아가는 퍼포먼스를 반복하는 것은 사각지대 찾기의 의미는 ‘도착’이라는 결과가 아닌 찾기라는 ‘과정’이라는 작가의 해석을 드러낸다.